1000억 원. 지붕 달린 돔구장이 아니라면 현대식 야구장을 하나 지을 수 있는 돈이다. 프리에이전트(FA) 제도 도입 8년째가 되는 내년이면 그간 FA 선수들에게 투입된 돈의 총액이 1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박재홍이 원 소속 구단인 SK와 4년간 최대 30억 원에 계약함에 따라 올 겨울 FA 선수들의 계약 총액은 160억 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FA를 선언한 14명 중 계약을 마친 9명의 몸값 총액은 159억 6000만 원(옵션 포함)이다. 송지만이 원 소속 구단 현대로부터 17억 원을 제시받는 등 미계약자 5명이 계약을 끝내면 올 겨울 FA 계약액은 190억 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FA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8개 구단은 FA 선수 42명과 계약하는 데 594억 7900만 원을 투입했다(한국야구위원회 연감 기준). 구단끼리 주고받는 보상금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선수들에게 투자된 액수다. FA 선수들의 계약액은 2004년 201억 7000만 원, 2005년 202억 9600만 원으로 치솟은 데 이어 '사상 최악의 흉작'이라던 올해도 결국 200억 원에 가까운 숫자에 접근했다. 이 추세면 FA 계약 누적액은 내년 시즌 10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이 끝나면 이병규(LG) 김동주 박명환(이상 두산) 등 이른바 '빅3'와 진갑용(삼성) 등 최대 25명의 FA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FA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이병규 김동주가 총액 100억 원대 계약을 따낼지는 미지수지만 이들이 '평년작'만 해도 FA 누적 계약액은 1000억 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8년에 걸쳐 60여 명의 선수에게 투자된 돈이긴 하지만 1000억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다. 1000억 원은 10년간 2억 5200만 달러에 계약한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겐 4년치 연봉에 불과할지 모른다. 동시에 1000억 원은 탬파베이와 캔자시스티, 피츠버그 등 메이저리그 3개 팀 전체 선수에게 1년간 연봉을 줄 수 있는 거액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는 30개 팀 중 ⅓ 가량은 흑자를 보고 있는 황금 시장이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이후 장부상 흑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만년 적자 구조다. 지난해 9월 문화관광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개 구단은 2004년에만 1070억 원의 적자를 봤다. 각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직간접 홍보 효과는 제외한 수치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6년만에 300만 관중을 기록하는 등 바닥을 벗어나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프로야구의 중흥을 위해선 투자가 선행되야 한다는 점, 투자의 주대상은 선수라는 점에선 FA 제도를 통해 선수들에게 더 많은 돈이 투입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투자가 균형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선 적잖이 우려된다. 지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지난해까지 새로 지어진 구장은 사실상 인천 문학구장이 유일하다(82년 잠실, 86년 사직 구장이 생겼지만 프로야구 창설 때 이미 건립 중이었거나 건립이 예정돼 있었다). 문학구장에는 부지 매입 비용을 빼고 순수 건설 비용으로 550억 원이 투입됐다. 인적 투자에 비해 기반 시설 투자에 지나치게 인색한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를 탓하기 앞서 구단들이 장기적 투자보다 당장 성적을 내기 위해 스타급 선수들을 끌어모은 데만 혈안이 돼있는 스스로부터 다시 돌아볼 때다. "이대로 가면 프로야구 다 망한다"는 김응룡 삼성 사장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하지만 망하는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은 외부가 아니라 구단 내부에 있다. FA 몸값 1000억 원 돌파는 이젠 더이상 놀이로도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다시 방망이와 글러브를 쥐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들이 미래 프로야구의 젖줄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1000억 원을 넘게 투자한 선수들이 지어진 지 30년이 넘는 구장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언제까지 팬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솟는 FA 몸값이 과연 한국 프로야구 실정에 적절한 수준인지 다시 한 번 따져볼 일이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2006시즌 후 FA가 되는 이병규(왼쪽)와 김동주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