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맨십' 사령탑의 씁쓸한 퇴장
OSEN U05000176 기자
발행 2006.01.21 17: 34

여자배구 GS칼텍스의 박삼룡(38) 감독이 지난 20일 전격 사임했다. GS칼텍스 구단은 최근 11연패로 팀이 최하위로 떨어진 데 책임을 지고 박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혀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박삼룡 감독을 여자배구 사령탑이 아닌, 지금은 해체된 고려증권의 마지막 우승 주역으로 기억하는 배구 팬들이 여전히 더 많을 것이다. 박 감독의 사퇴로 팀을 이끌게 된 이성희 감독대행 역시 박 감독과 같은 고려증권 출신이다.
지난 2000년 당시 LG정유 코치로 팀에 합류한 박삼룡 감독은 2003년 5월 감독에 선임된 뒤 2년 넘게 GS칼텍스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프로배구 원년인 지난해 4승 12패로 5개팀 중 4위에 그친 데 이어 올 시즌 최하위로 처지자 결국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 GS칼텍스에도 뒤져 꼴찌였던 흥국생명이 올 시즌 단독 선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그야말로 희비 교차다. 따지고 보면 박 감독의 사퇴와 흥국생명의 돌풍은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니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GS칼텍스와 동률 최하위로 탈꼴찌를 다투던 시즌 막판 GS칼텍스와 마지막 2경기에 황연주 등 주전 선수들을 대거 빼며 꼴찌 굳히기에 나섰다. 드래프트 1순위 티켓을 잡아 고교 최고 거포로 소문난 김연경을 잡기 위한 목적이었다.
박삼룡 감독도 김연경이 성인 배구판을 뒤흔들 만큼 대단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흥국생명의 '고의 져주기'에 맞대응을 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지만 흥국생명과 두 경기에 전력 투구, 두 게임 모두 세트 스코어 3-0으로 이기며 4위를 확정했다.
팀이 LG칼텍스정유에서 GS칼텍스로 새 출발을 한 마당이라 꼴찌를 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똑같이 져주기 추태로 맞대응을 해 배구판을 흐리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박 감독은 당시 "우리 팀엔 드래프트 1순위 출신인 김민지 나혜원이 있는데 김연경까지 차지하는 것보다는 다른 팀으로 가는 게 배구 발전을 위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했다. 박 감독의 '바람'대로 김연경은 흥국생명에 지명됐고 김연경은 황연주와 쌍포를 이뤄 팀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슈퍼리그 9연패의 주역 호남정유의 후예인 GS칼텍스가 최약체로 전락한 데는 박 감독 등 코칭스태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GS칼텍스는 김민지 나혜원 드래프트에서 지나치게 공격 일변도로 선수들을 뽑는 바람에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노출했다는 지적이 있다.
흥국생명의 돌풍 역시 김연경 혼자 해내고 있는 일은 아니다. 2년차 황연주가 전천후 플레이어로 종횡무진하고 있고 부상에서 회복한 센터 진혜지와 세터로 전환한 이영주의 분발 등 모든 선수들이 뿌린 땀의 결과다.
하지만 김연경이 흥국생명이 아닌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흥국생명의 대분발도 박수를 받을 만하지만 그걸로 끝이라면 옳은 일이 아니다.
끝까지 스포츠맨십을 잊지 않고 자신과 팀보다는 여자 배구라는 큰 그림을 생각했던 박삼룡 감독의 '페어 플레이'를 기억해주는 건 언론과 함께 모든 배구 팬들의 몫이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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