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30년 가까이 계속돼 온 '밤비노의 저주'의 끝을 보는 듯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테드 윌리엄스의 홈런포와 바비 도어, 루디 요크의 방망이를 앞세워 시즌 개막과 함께 15연승으로 뛰쳐나간 보스턴은 154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이틀을 빼곤 아메리칸리그 선두(당시는 지구 구분이 없었음)를 놓치지 않았다.
보스턴은 2위 디트로이트와 10게임 차도 넘게 벌려 일찌감치 월드시리즈행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예상 못한 변수가 생겼다. 내셔널리그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브루클린 다저스가 154경기를 모두 마치고도 자웅을 가리지 못한 것.
96승 58패로 동률를 이룬 카디널스와 다저스는 3전 2선승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돼 보스턴은 월드시리즈까지 일주일을 그냥 앉아서 놀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시즌 막판 선두가 굳어진 상황에서 맥빠진 경기를 해와 경기 감각이 떨어질까 걱정하던 조 크로닌 보스턴 감독은 '묘안'을 냈다. 이미 시즌을 마친 다른 팀들의 협조를 얻어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팀을 구성해 펜웨이파크에서 연습경기 3게임을 치르도록 한 것이다.
크로닌의 선택은 저주와 좌절로 점철된 보스턴 역사에서도 최악의 패착으로 기록된다. 시즌 중 난 데 없이 잡힌 연습경기 첫 게임에서 워싱턴 세너터스 왼손 투수 미키 해프너가 던진 공에 테드 윌리엄스가 오른쪽 팔꿈치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곧바로 교체된 윌리엄스는 심한 타박상으로 나머지 두 게임은 건너뛰었다.
며칠 뒤 시작된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은 다저스를 꺾고 올라온 세인트루이스를 맞아 한 경기씩 주고받는 그야말로 혈전을 펼쳤지만 결국 7차전에서 3-4 한 점 차로 무릎을 꿇었다. 정규시즌 타율 3할4푼2리에 38홈런 123타점으로 불을 뿜었던 윌리엄스의 방망이가 7경기에서 2루타 한 방 없이 25타수 5안타, 타율 2할로 싸늘하게 식은 게 결정적이었다.
에디 다이어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윌리엄스가 타석에 설 때마다 3루수를 아예 2루 베이스 쪽으로 옮기고 유격수에게 2-3루간을 맡기는 극단적인 '시프트'를 펼쳐 윌리엄스의 발목을 잡았다. 고집센 윌리엄스는 끝까지 팔꿈치 핑계를 대지 않았지만 7차전 패배 뒤 라커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1946년은 밤비노의 저주의 끝이 아니라 저주의 시작이었다.
60년 전 사건에 이미 해답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혼혈 스타 하인스 워드의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꿈의 슈퍼볼 정상을 차지하면서 와일드카드 제도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피츠버그는 AFC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지구 우승 팀들보다 플레이오프 관문을 한 개 더 통과해야하고 그나마 모든 포스트시즌 게임을 원정경기로 치러야하는 절대 불리한 여건에서도 슈퍼볼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6번 시드를 받은 팀이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건 피츠버그가 사상 처음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와일드카드 팀들이 강세가 굳어진 지 오래다. 1995년 처음 도입된 이래 지난해까지 11년간 6번이나 와일드카드 팀이 월드시리즈에 올랐고 2002~2004년엔 애너하임-플로리다-보스턴 등 와일드카드 팀이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우승팀 역시 와일드카드 휴스턴이다.
보스턴은 베이브 루스의 양키스 트레이드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1946년 시즌 중 연습경기라는 묘수를 냈지만 제 꾀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보스턴이 바란 건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경기감각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었지만 긴장감이 떨어지는 연습경기와 1승 1승에 사활이 걸린 정규시즌 경기의 효과가 같을 수는 없다. 와일드카드 팀이 막판에 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NFL과 메이저리그에서 와일드카드 팀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60년 전 테드 윌리엄스가 흘린 눈물이 떠올랐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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