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모토시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이 지난 9일 오후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75세.
현역 시절 비운의 에이스로 불렸던 후지타 전 감독은 두 번이나 요미우리 사령탑에 취임,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명장이다. 아울러 하라 다쓰노리 현 요미우리 감독을 직접 스카우트, 오늘에 이르게 한 스승이기도 하다.
게이오대학-일본석유를 거쳐 1957년 요미우리에 입단한 고인은 17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입단 2년째인 1958년에는 29승, 이듬해에는 27승으로 리그 MVP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MVP를 차지했던 해 일본시리즈에서는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우완 투수로 추앙 받은 이나오 가즈히사가 이끄는 니시테쓰에 연속 패해 비운의 에이스라고 불렸다.
프로 8년 동안 통산 119승 88패, 방어율 2.20의 기록을 남긴 고인은 1981년 요미우리 감독에 취임한다. 1975년 현역은퇴와 동시에 감독을 맡았던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6년 동안 센트럴리그 우승 2회를 차지했을 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물러난 다음이었다.
일본 야구의 영웅이었던 나가시마 감독이 퇴진한 후라서 고인에게는 ‘나가시마를 쫓아낸 사람’이라는 비난도 따랐지만 감독 부임 첫 해 보기 좋게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하라 감독은 당시 신인으로 125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2할6푼8리, 22홈런 67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3년째인 1983년 리그 우승을 한 번 더 차지하고 왕정치 감독(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고인이 다시 요미우리 사령탑에 오른 것은 왕정치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1989년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요미우리 전성기를 이끌었던 O-N(왕정치-나가시마)이 감독으로 실패를 맛 본 뒤였다. 스타 감독의 실패 후 팀 분위기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지만 두 번째도 고인은 팀 재건에 성공했다. 역시 부임 첫 해 일본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고 이듬해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5년 동안 재임한 뒤에는 나가시마 감독에게 바통을 넘겼다.
고인은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81년과 1989년 쇼리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다.
9일 저녁 식사 도중 스승의 부음을 접한 하라 감독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 구단을 통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용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후지타 감독이 별세할 리는 없을 것이고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고 조의를 표했다. 하라 감독은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지를 떠나 10일 도쿄에 있는 고인의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박승현 기자 nang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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