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프시즌 뉴욕 양키스와 메츠, 시카고 컵스 등 상당수 메이저리그 팀들은 선발 투수보다는 불펜 보강에 주력했다. 시장에 나온 대어급 선발요원이 드물었던 탓도 있지만 불펜의 비중이 갈수록 커져가는 추세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수 놀음'이라는 야구에서 경기를 혼자서 책임질 수도 있는 선발 투수만큼 중요한 건 역시 없다. 홈런 타자들이 즐비한 팀도 꼴찌로 떨어질 수 있고 막강 불펜을 갖춘 팀이 하위권을 맴돌 수 있지만 강한 선발투수들이 많은 팀은 필연적으로 좋은 팀이 될 수밖에 없다.
강한 선발 투수의 잣대는 효과적으로 길게 던지는 것이다. 여기서 '길게 던진다'는 개념이 '효과적으로 던진다'보다 더 포괄적이다. 효과적으로 던져야만 마운드에서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오래 버티는 선발투수를 많이 보유한 팀만이 메이저리그의 정글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선발 투수들의 투구횟수가 1000이닝을 넘긴 팀은 8개 팀뿐이었다. 1위가 어떤 팀일지는 짐작키 어렵지 않다. 1~4 선발인 마크 벌리-존 갈랜드-프레디 가르시아-호세 콘트레라스가 모두 200이닝을 넘게 던진 월드시리즈 우승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다.
화이트삭스는 지난해 시즌 내내 올란도 에르난데스와 브랜든 매카시까지 선발 투수를 6명밖에 쓰지 않았지만 이들 6명이 무려 1074이닝을 던졌다. 2위는 양 리그를 통틀어 최다승을 거둔 세인트루이스로 1048이닝, 3위는 화이트삭스와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한 휴스턴의 1029이닝이다. '길게 오래가는' 선발투수를 많이 가진 팀이 강팀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5년간을 살펴보면 선발투수들이 1000이닝을 넘긴 팀은 해마다 4~5개 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8개 팀으로 눈에 띠게 늘었다. 약물 검사 본격 실시로 타자들이 위축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찌 됐든 최근 5년간 월드시리즈 우승 팀 중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979⅓이닝)를 뺀 4개 팀이 선발 1000이닝을 넘겼다. 커트 실링-페드로 마르티네스 쌍두마차가 이끈 2004년 보스턴(1007이닝)도, 제러드 워시번-라몬 오르티스가 앞장섰던 2002년 LA 에인절스(1007⅔이닝)도 그랬다.
그 5년간 팀 득점 전체 5위 안에 든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두 차례(2002년 에인절스, 2004년 보스턴)에 그쳤다. 반면 같은 5년간 불펜 방어율이 30개 팀 중 5위 안에 든 팀이 우승을 한 경우는 2001년 애리조나, 2002년 에인절스, 지난해 화이트삭스 등 세 차례 있었다.
튼튼한 불펜 역시 최후의 승리를 위해선 필수 요건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강한 선발진이 전제됐을 때에만 불펜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선발투수 투구 횟수에서 30개팀 중 18위(965⅔이닝)에 그친 양키스가 선발을 전혀 보강하지 않은 것과 최강 선발진의 화이트삭스가 지난해 선발로 125⅓이닝을 던진 올란도 에르난데스를 내주고 216⅔이닝을 던진 하비에르 바스케스를 영입한 건 대조적인 선택이다.
양키스는 지난해 '펑크'를 냈던 칼 파바노-재럿 라이트의 재기 여부, 화이트삭스는 지난해 월드시리즈까지 240이닝 안팎으로 강행군을 한 4명이 뒷탈이 없을지가 변수라 둘 중 누가 선발 이닝 경쟁의 승자가 될지는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올 시즌엔 과연 어떤 팀이 '선발 1000이닝'의 지름길로 월드시리즈까지 내달릴까.
■최근 5년간 선발 투구 이닝 1~4위 팀
2005년=시카고 W(1074)-세인트루이스(1048)-휴스턴(1029)-미네소타(1025⅔)
2004년=오클랜드(1030⅔)-시카고W(1008)-보스턴(1007⅔)-시카고C(1007)
2003년=뉴욕 양키스(1066)-시카고C(1030⅓)-시애틀(1026⅓)-오클랜드(1018)
2002년=애리조나(1059⅓)-오클랜드(1033)-뉴욕 양키스(1024⅔)-LA 에인절스(1007⅔)
2001년=오클랜드(1022⅓)-애틀랜타(1007⅔)-애리조나(1002⅔)-LA 에인절스(1000⅓)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