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8강 병역 면제' 주장은 넌센스
OSEN U05000014 기자
발행 2006.02.21 08: 49

지난 20일 저녁 늦게 일본 후쿠오카에서 날아온 소식은 조금은 어이가 없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현지 적응 훈련에 들어간 한국 대표팀을 격려 방문한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선수들의 병역 혜택 문제를 국방부에 요청했다"며 "국방부에선 4강 정도 성적을 내야 병역 혜택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8강에만 올라가도 혜택이 주어지도록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취임한 지 한 달 남짓 된 신상우 총재가 정치인 출신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를 떼려고 급한 마음에 꺼낸 말이라고 넘어가기엔 도가 지나쳐 보인다. 미국 도미니카공화국 등 16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 중국 대만과 함께 예선 A조에 속해있다. A조 4팀 중 절반인 2팀이 2라운드 즉 8강에 올라간다. 1990년대 들어서야 야구를 시작한 중국이 한국의 대학야구 수준을 막 벗어난 상태여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대만과 일본 중 한 팀만 이겨도 8강이 사실상 확정된다. 다른 종목과 형평성을 논하기 앞서 헌법에 규정된 국방의 의무가 고작 야구경기 1승의 값어치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신 총재는 야구 팬뿐 아니라 이미 병역의 의무를 다했거나 앞으로 의무를 수행할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 모두를 모독했다.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참가하는 최초의 대회라는 의의가 있다지만 WBC도 결국 또 하나의 세계선수권대회일 뿐이다. '올림픽 3위 이내나 아시안게임 우승 및 월드컵 축구 16강'으로 병역 혜택을 한정한 병역법 시행령을 넘는 유난한 특혜를 누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축구와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200여 개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이 모두 예선에 참가하는 대회서 16강에 드는 게, 국제야구연맹(IBAF) 회원국 수는 100여 개국이지만 예선 참가국 수가 16개국인 WBC 대회의 어디 쯤에 해당하는 지부터 따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1982년 최초의 프로 스포츠로 출범한 프로야구가 20여 년간 수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때로는 위안과 안식을 준 공이 적지 않다. 한창 뻗어나야 할 시기에 병역에 발목 잡혀 눈물짓는 선수들의 고민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비인기 아마 종목들에 비해 야구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상무에다 최근엔 경찰 야구단까지 생겨 운동을 계속 하면서 병역을 마칠 방법이 그 어느 종목보다 많아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야구가 정식종목에서 탈락한다지만 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병역 면제의 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병역 혜택은 국위 선양을 한 소수 국민에게 국가가 국민을 대신해 주는 특혜다. 국위 선양은 문화 및 스포츠,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 나라 안으로는 국민들에게 벅찬 기쁨과 자부심을 안기고 나라 밖으로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널리 떨칠 만한 성과를 이뤘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WBC에서 대만을 꺾는 것도 기쁜 일이겠지만 이를 곧 국위 선양이라고 주장하는 건 넌센스에 가깝다. 국민의 마음을 떠난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듯 프로 스포츠 역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프로 스포츠라 불릴 자격이 없다. 정치인 출신 총재가 야구 경기 1승과 바꾸자고 주장할 만큼 병역의 의무는 하찮지 않다. '8강 병역 면제' 운운하는 발언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을 허탈하게 하는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야구는 야구 이상도, 야구 이하도 아니고 야구일 뿐이다. 이종민 기자 mini@osen.co.kr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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