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12시 50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 여성 몇 명이 한 손에는 핸드폰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를 각자 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요 며칠 광화문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배우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1인 시위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날은 장동건이나 이준기 같은 영화계 스타가 아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진욱 위원장이 '스크린쿼터 사수'란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발해 지난 4일 거리로 나선 안성기 이후 영화배우나 감독이 아닌 영화산업종사자가 처음 평일 1인 시위에 나선 것. 그러자 약 5분여간 모여 있던 이 여성들은 최 위원장이 든 피켓에 적힌 최 위원장의 이름을 보고 '노조위원장이래' '오늘은 영화배우 안 오나 봐' '나 지난 번 이준기 못 찍었는데'란 말을 남기고 이내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시위 현장은 평소와 다르게 한산했고 때론 적막했다. ◆여론을 의식한 1인시위 안성기를 필두로 시작된 영화인들의 1인 시위는 당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찬성 쪽으로 기우는 여론을 의식해 시작됐다. '왕의 남자'와 같이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영화계 내부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양극화가 존재하는데 더 이상 146일의 스크린쿼터가 불필요하다는 정부의 의견에 여론이 찬성하는 기미를 보였다. 정부관계자는 외제차에 외제명품을 이용하는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를 악용해 결국 밥그릇 챙기는 것 아니냐는 일부 누리꾼의 댓글까지 인용해 스크린쿼터 사수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을 코너로 몰고 갔다. 이런 상황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 공동위원장인 안성기는 세계영화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영화인들의 릴레이 1인 시위의 첫 주자로 나섰다. 지난 번 국민의 정부 때 불거졌던 스크린쿼터 문제 때와 다른 차가운 여론에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강행을 저지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동지' 규합에 성공 이후 광화문 거리에는 박중훈 장동건 최민식 등 배우들이 나섰고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대규모 영화인 집회를 정점으로 스크린쿼터 반대 움직임이 조직화 되고 있음을 알렸다. 거리로 나선 배우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며 스크린쿼터가 73일로 축소됐을 경우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한국영화는 고사에 직면할 것이라며 시위를 지켜보는 시민에게 스크린쿼터 사수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평소 영화나 TV 등 미디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던 스타들이 거리나선 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이슈였다. 이들의 시위는 날을 거듭 할수록 많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됐으며 셋째 날 장동건의 1인 시위에 시민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렀다. 이날 장동건은 이전의 안성기나 박중훈과 마찬가지로 교보빌딩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지만 2000여 명이 넘는 시민이 몰리는 바람에 5분만에 시위를 접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이동해야 했다. ◆일부는 '본질'에 무관심 영화인들의 1인 시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최근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75.6%가 스크린쿼터 유지에 찬성하며 국내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영화인들이 누차 강조한 대로 누가 봐도 할리우드 자본에 쉽게 대항할 수 없는 한국영화의 보호를 위해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스크린쿼터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20.9% 중에 30대, 자영업과 화이트칼라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즉 고학력, 고소득 층으로 경제의 중심을 이끌고 있는 여론주도층에서 스크린쿼터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조사 항목에서는 응답자의 57.6%가 영화도 일반산업과 마찬가지로 시장경쟁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밝혀, 앞선 응답자 4명 중 3명이 국내 영화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과 모순되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는 최근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미디어에 경쟁적으로 노출이 됐고 일반 국민도 이에 감성적으로 동감하고 있으나 또 하나의 측면, 즉 경제적 관점에서 영화도 산업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거리로 나선 일부 스타들은 1인 시위에 나서는 소감을 묻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스크린쿼터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나왔다'고 답해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줬다. ◆대화라도 해야 20일 1인 시위자로 나선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진욱 위원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이슈화 하면서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영화계 양극화 문제 등은 스크린쿼터와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영화계 내부에서 대화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영화계도 이제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 대신 나름의 논리로 스크린쿼터 문제에 접근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같은 논리는 남아 있는 정부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계 나름의 논리를 들고 정부와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이 그것이다.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한국영화의 양극화 문제나 독립영화 진흥을 위한 청사진도 영화계가 먼저 내놓고 이를 스크린쿼터 사수 필요성과 연결시켜야 한다. 한국영화가 잘된 지 얼마 안돼 뒤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는 변명은 언제까지나 통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또한 정부도 미봉책이라 비판 받고 있는 4000억 지원 대책만 내놓고 귀를 막을 일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영화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국경제도 살리고 영화도 살리는 묘수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무언가 얻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희생이 따라야 한다. 정부, 영화인, 그리고 국민 모두가 서로에게 득이 되도록 이성적인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이유다. 글, 진=강성곤 기자 sunggon@osen.co.kr 20일 오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진욱 위원장이 미 대사관 앞에서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배우들의 시위처럼 시끌벅적한 취재진이나 팬들이 없어 '조용한 1인 시위'가 됐다.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