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벌어진 WBC 개막전인 1라운드 한국-대만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투수전이었다. 아직 실전경험이 많지 않아 빠른 볼에 익숙하지 않은 타자들에 비해 투수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대로였다. 투구수 제한이 있는 판에 경기까지 투수전으로 전개되니 가장 힘든 것이 투수 교체였다. 하지만 한국 김인식 감독과 선동렬 투수 코치는 마치 '미로 찾기'와도 같았던 마운드 운용을 절묘하게 해내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아직 한 타자가 더 남았는데. 선발 서재응에 대해 대만 타자들은 초반부터 기다리는 작전을 폈다. 웬만하면 투스트라이크를 먹을 때까지 꼼짝도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서재응은 2회에만 21개로 다소 많이 던졌을 뿐 투구수 관리를 잘해 4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서재응이 1사 1루에서 세자센을 삼진으로 돌려 세웠을 때 선동렬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서재응이 내려가고 김병현으로 교체됐다. 그 때까지 서재응의 투구수는 61개. 제한 투구수인 65개에 4개가 여유 있어 다음 타자도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회 규정상 투구 제한은 65구이지만 타자를 상대하는 도중 제한 투구수에 이르면 그 타자와 승부가 끝날 때까지는 더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서재응과 김병현 모두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했다. 대만 선발 린언위는 앞서 4회초 2사 2루에서 홍성흔에게 적시타를 맞고 결승점을 허용했다. 린언위가 볼카운트 2-2에서 6구째 던진 볼이 바로 자신의 65번째 투구였고 홍성흔의 배트에 걸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결정구로 던진 슬라이더가 제대로 돌지 않았다. 서재응 역시 2사 2루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약 적시타를 허용해 동점 주자가 나갔거나 사사구 등으로 주자가 두 명이 된 뒤 김병현과 교체된다면 김병현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배짱 하면 김인식이지. 한국은 6회 위기를 맞았다. 2-0으로 앞선 6회 1사 2루에서 김병현에 이어 등판한 좌완 구대성이 좌타자 린웨이추의 강한 타구를 잘 막았지만 2루 주자를 아웃시키려다 타자주자까지 모두 살려주는 바람에 1사 1,2루로 몰렸다. 다음 타자는 대만이 자랑하는 우타자 장타이산이었다. 하지만 한국 덕아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구대성에게 맡겨 놓겠다는 의도였다. 구대성은 이런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듯 장타이산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다. 대만 벤치는 다음 좌타자 세자센 대신 오른쪽 타자 황룽이를 내세웠다. 한국을 흔들어 보려는 기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인식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대성은 황룽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배짱으로 넘긴 위기였다. ▲경기는 흐름. 7회부터 등판한 박찬호가 9회에도 아무일 없다는 듯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다. 물론 박찬호가 7,8회 2이닝 동안 20개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마무리까지 맡기는 것은 약간 의외였다. 김인식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야구 경기는 흐름이다. 앞선 기회(8회 1사 3루)에서 점수를 냈다면 마무리 오승환을 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 박찬호가 계속 던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박찬호는 지난 1일 롯데 마린스와 연습경기에 등판, 1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했지만 3일 대만전에서는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147km에 달하는 빠른 볼을 앞세워 대만 타자들을 압도했다. 한국 벤치는 이런 상승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새로운 투수를 투입하는 것 보다 유리하다고 봤다. 7회부터 던지고 있던 박찬호에게는 2-0인 경기 상황이 별로 의식되지 않지만 만약 새로운 투수가 들어가면 2점이라는 아슬아슬한 점수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오승환은 구위가 아주 빼어난 투수이고 배짱도 두둑하긴 하지만 국제경기 경험이 적다. 이런 부담이 큰 경기에 내보내 자칫 또 한 번 투수를 교체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한국팀 전체에 큰 부담이 된다. 다행히 박찬호는 9회 2사 1,3루의 위기를 잘 넘기며 경기를 매조지했고 한국으로선 오승환을 4일 중국전 등 비교적 부담이 적은 경기에 등판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nanga@osen.co.kr 선발 서재응을 4회 2사 후 구원 등판해 6회 1사 후까지 승리의 디딤돌이 된 김병현의 투구./도쿄돔=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