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치 감독이 곤혹스럽게 됐다. 큰 승부에서 연이은 패배 때문이다.
지난해 WBC 개최가 확정되면서 일본 대표팀 사령탑은 자연스럽게 왕정치 감독으로 확정됐다. 자연스럽다는 의미는 나가시마 요미우리 종신명예 감독 때문이다.
나가시마 감독은 앞서 열린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일본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일본이 프로선수 출전이 처음 허용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해 노메달에 그치는 수모를 만회하기 위해 구성한 드림팀 감독이었다.
시드니올림픽 때와 달리 전 선수를 프로로 구성한 아테네올림픽 대표팀은 2003년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예선에서 한국을 2-0으로 셧아웃시키고 1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정작 나가시마 감독은 올림픽 본선을 몇 달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감독 없이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은 준결승에서 호주에 충격의 패배를 당하는 바람에 동메달에 그쳤다. 목표로 했던 우승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절치부심 명예회복을 노리던 일본야구는 WBC가 열리게 되자 이번에는 왕정치 감독에게 팀을 맡겼다. 왕정치 감독은 나가시마 감독과 함께 일본야구를 상징하는 인물이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록 마쓰이, 이구치가 대표팀 합류를 사양하고 조지마 역시 메이저리그 진출 관계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왕정치 감독은 WBC 1라운드 시작 전부터 “3전 전승을 거두고 2라운드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과 경기 하루 전까지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의 철벽 마운드와 수비, 그리고 이승엽의 한 방을 이겨내지 못하고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일본의 왕세자 부부가 2000년 이후 6년만에 야구장을 찾았고 전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나가시마 감독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6일 일본 신문에는 '이치로를 3번으로 기용해야 한다'느니 'WBC 2라운드에서 한국과 다시 만나면 와타나베 대신 좌완 스기우치, 와다를 기용해야 한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앞서 왕정치 감독은 소속팀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지휘하며 쓰라린 패배를 맛봐야 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는 페넌트레이스에서 89승 2무 45패를 기록했다. 퍼시픽리그 보다 10경기나 더 치르는 센트럴리그 1위 한신이 거둔 87승 보다 더 많은 승수였다.
하지만 퍼시픽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롯데 마린스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3차전 9회 3점차로 리드당하다동점을 만들고 연장전 승리를 이끈 뒤 4차전에서도 이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마지막 5차전에서 다시 롯데에 패해,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투 타 모두 앞선 전력으로 평가됐던 데다 전경기를 홈에서 치르는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리그 챔피언이 되는 데 실패했다.
지도자로서 왕정치 감독은 호된 시련을 겪은 경험이 더 있다. 현역 은퇴와 함께 1984년 요미우리 사령탑에 취임했지만 재임 5년 동안 한 번도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리그에서 우승한 것도 197년 한 번뿐이다.
다이에(현 소프트뱅크)로 옮겨서도 마찬가지. 1995년 부임했지만 내리 4년 동안 리그 우승과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도자로는 뛰어나지 않다’는 평에 시달려야 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반드시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의 표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왕정치 감독은 1999년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요미우리까지 합치면 무려 지도자생활 10년만에 처음으로 차지한 일본시리즈 우승이었다. 2003년 한 번 더 일본시리즈에서 우승, ‘지도자로는 뛰어나지 못하다’는 세평을 잠재울 수 있었다.
국가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첫 승부에서 고배를 마신 왕정치 감독이 WBC 2라운드에서는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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