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렐 허샤이저(48)의 1988년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이듬해인 1989년에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1988년의 마지막 두 달간 허샤이저(당시 LA 다저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8월 30일 몬트리올전 6회부터 페넌트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7차례 선발 등판에서 56이닝 동안 단 한 점을 내주지 않았고 그 7경기에서 6승(무패)을 따냈다. 6승 모두가 완투승에 5경기는 완봉승이다.
59이닝 연속 무실점은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기록으로 남아있지만 그 게 전부가 아니다. 허샤이저는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뒤 펼쳐진 뉴욕 메츠와 리그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 8회까지 무실점으로 비공인이지만 연속 무실점을 67이닝으로 늘렸다. 챔피언십시리즈 최종 4차전에서 5피안타 완봉승을 따낸 허샤이저는 오클랜드와 월드시리즈에선 2차전 3피안타 완봉승, 최종 5차전 4피안타 2실점 완투승으로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한 허샤이저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까지 수상하며 데뷔 6년만에 최고 투수로 우뚝 섰다. 정규 시즌 23승 8패에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에서 동시에 완봉승을 따낸 데 대한 당연한 보상이었다(사이영상 투표는 포스트시즌 시작 전에 실시되지만).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2000년이 투수로서 가장 위대한 시즌이었다면 마지막 두 달로는 허샤이저의 1988년 9월과 10월을 꼽을 만하다. 허샤이저는 1988년 마지막 13경기 등판에서 101⅔이닝 55피안타로 2이닝 당 한 개 꼴로만 안타를 내주며 방어율 0.44를 기록했다. 밥 깁슨이 1.12의 살인적인 방어율을 기록했던 1968년 시즌 중반 한때 96⅔이닝 방어율 0.19를 찍었던 것과 비견할 만하지만 당시는 마운드 높이가 15인치로 5인치나 더 높았던 시절이다.
어쨌든 최고의 한 해를 보낸 허샤이저는 이듬해인 1989년 16승 15패의 '평범한' 투수로 돌아가버렸다. 문제는 허샤이저에게 있지 않았다. 1988년 2.26이었던 허샤이저의 방어율은 1989년 2.31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닝당 출루허용수(WHIP)도 1.052에서 1.181로 약간 높아졌을 뿐이다. WHIP 0.13의 차이는 8이닝 꼴로 주자를 한 명 더 내보내는 정도로 큰 차이랄 수 없다.
1988년 페넌트레이스에서만 267이닝을 던졌던 허샤이저는 1989년 256⅔이닝으로 여전히 많은 투구 횟수를 소화했다. 이닝수가 줄어도 탈삼진은 178개로 1988년과 똑같았다. 기록 어디를 봐도 23승 8패의 사이영상 수상자가 승률 5할 투수로 전락한 원인은 찾을 수가 없다.
답은 다저스 타선에 있었다. 1989년 다저스는 팀 득점이 고작 554점으로 내셔널리그 12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할 만큼 타선이 무기력했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나 에이스 허샤이저가 등판한 경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허샤이저가 당한 15패 중 4경기는 최종 스코어가 0-1이었고 또다른 4경기에서도 다저스 타선은 점수를 뽑아내지 못했다. 다저스 타선은 허샤이저가 등판한 경기에서 36이닝 동안 한 점을 못내는 진기록을 이어가기도 했다.
허샤이저가 패전 투수가 된 15경기에서 다저스는 총 17점을 뽑는 데 그쳤다. 그 15경기에서 허샤이저가 내준 점수는 41점에 불과했다. 가정이지만 다저스 타선이 그 15경기 중 8경기에서 19점만 더 뽑아줬다면 허샤이저는 그해 16승 15패가 아니라 23승 7패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사이영상을 탄 1988년보다도 오히려 뛰어난 성적이다.
허샤이저의 1988년과 1989년은 투수의 승패가 때론 현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잘 말해주는 사례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메이저리그에선 케빈 밀우드(당시 클리블랜드)와 존 패터슨(워싱턴) 재러드 워시번(LA 에인절스) 카를로스 실바(미네소타) 등 규정이닝을 채우며 2점대 또는 3점대 초반의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10승을 못 딴 투수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선 워시번이 득점지원(Run Support) 3.81로 가장 운이 없었지만 패터슨 3.81, 밀우드 3.98, 실바 4.25 등으로 예외 없이 팀 타선의 지원이 형편 없었다.
올해 밀우드는 텍사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워시번은 시애틀에 입단했다. 팀을 바꾼 둘이 불운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또 올해는 누가 2005년의 밀우드, '1989년의 허샤이저'가 될까.
■2005년 득점지원(RS) 상하위 5걸
▲상위 5걸
데이빗 웰스(보스턴)=7.97점
크리스 영(텍사스)=7.32점
맷 클레멘트(보스턴)=6.88점
클리프 리(클리블랜드)=6.46점
제프 프랜시스(콜로라도)=6.37점
▲하위 5걸
킵 웰스(피츠버그)=3.07점
마크 레드먼(피츠버그)=3.23점
라이언 프랭클린(시애틀) 3.30점
잭 그레인키(캔자스시티)=3.39점
하비어 바스케스(애리조나)=3.5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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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렐 허샤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