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지고 ‘과거 찾기’가 대세?.
TV 드라마들 속에서 신데렐라가 사라지고 있다. 한 때 대유행이었던 재벌 2세와 청순녀의 극적인 사랑이야기, SBS TV ‘파리의 연인’(김은숙 강은정 극본, 신우철 연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손황원 극본, 이승렬 연출), KBS 미니시리즈 ‘풀하우스’(민효정 극본, 표민수 연출) 등으로 대표되는 꿈 같은 신분상승의 스토리, 이른바 신데렐라 드라마들이 세를 잃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뭔가 특별한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고 과거의 인연이 현재를 지배하는 구조를 지낸 드라마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리얼리즘 경향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신데렐라 드라마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노희경 작가가 펜을 잡은 KBS 2TV 수목극 ‘굿바이 솔로’(노희경 극본, 기민수 연출)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들은 사랑의 완성을 통한 신분상승 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다. 천정명은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형제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카페 종업원이고 윤소이는 엄마의 끊임없는 애정욕구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설치미술가다. 김민희가 연기하는 최미리라는 여인은 카페의 월급쟁이 사장이다. 밝고 거칠 것 없는 성격을 지녔지만 건달과 목적 없는 사랑을 한다. 김민희가 사랑하는 남자 강호철, 즉 이재룡은 뒷골목 건달이다.
여기에 너무나도 많은 과거를 안고 있을 것 같은 두 여인 영숙(배종옥 분)과 미영할머니(나문희 분)가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애정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사연과 심리에 더 몰입한다. ‘굿바이 솔로’는 ‘남녀 관계가 어떻게 전개 되느냐’ 보다는 ‘지금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를 더 고민하고 있다.
오는 27일 시작하는 SBS TV 월화드라마 ‘연애시대’(박연선 극본, 한지승 연출)는 아예 이혼문제를 다뤘다. ‘굿바이 솔로’에 비해서는 훨씬 가벼운 터치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지만 흔히 나오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는 아니다. 남녀 주인공 감우성과 손예진은 사소한 이유로 이혼을 하고, 헤어지고 난 뒤에 서로에게 더욱 집착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미 사회 문제가 된 이혼이라는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혼의 근본 이유인 ‘가볍게 봐 왔던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 6일 첫 방송 된 KBS 2TV 월화드라마 ‘봄의 왈츠’(김지연 황다은 극본, 윤석호 연출)는 ‘겨울연가’ ‘가을동화’ 등 윤석호 감독이 만든 계절 연작의 전개 법칙을 그대로 따랐다. 처음부터 순수한 사랑찾기가 목적이다. 재벌이 등장하고 사랑의 암투가 난무하는 그런 드라마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신데렐라 드라마와 유사성을 지닌 작품도 있기는 있다. 13일부터 방송되는 MBC TV 새 월화극 ‘넌 어느 별에서 왔니’(정유경 극본, 표민수 연출)가 약간의 냄새는 풍긴다. 교통사고로 죽은 옛 여인을 잊지 못하는 젊은 영화 감독 김래원이 죽은 애인과 꼭 닮은 산골 처녀 정려원을 만나 사랑을 찾아 간다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에는 표면적으로는 재벌 회장과 그 친인척들이 나온다. 주인공 정려원은 김래원의 죽은 애인의 여동생이자 재벌 회장의 잃어버린 손녀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데렐라와 ‘소공녀’의 드라마적 조합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라인은 정려원이 재벌 회장의 손녀임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졸지에 신분상승을 이룬 여자 주인공 복실(정려원)의 순탄하지만은 않을 상류사회 적응기가 주된 이야기다. 신데렐라 드라마의 현실판이라고 볼 수 있다. ‘신데렐라는 그렇게 해서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는 스토리다. 기존 신데렐라 드라마와는 시각이 다르다.
새봄 드라마 전쟁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확실히 이전 드라마들하고는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세상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들이 현실에 뿌리는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라’고 한꺼번에 울어대는 자명종 같다.
혹자는 이런 흐름을 코앞에 다가온 선거철의 영향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오는 5월 31일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 장을 뽑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환상에 잠겨 있기보다는 현실의식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는 분석이다.
굳이 음모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데렐라 이야기가 더 이상 시청자를 끌 수 없다는 현실론이 지배적인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경향이 인기를 끌면 너도나도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을 쏟아 냈고 그것이 지구상에서 가장 변화가 빠른 시청자 기호를 만들어 낸 것이 우리나라 드라마계의 풍토다. 여기에 길들여진 우리 시청자들의 욕구는 이미 또 다른, 색다른 맛을 향해 저만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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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바이 솔로’ ‘연애시대’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출연진들(위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