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조희준 국제팀장은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저녁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주관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한국팀의 경기 일정을 중계방송 관계로 변경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하자 KBO 국제담당 책임자로서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조 부장은 대회 주최측이 흥행만을 고려해 홈팀이자 B조 2위인 미국의 8강리그 첫 경기를 낮 경기에서 야간 경기로 바꾸기 위해 아시아라운드 1위팀인 한국의 경기 일정까지 즉흥적으로 변경하려 든 것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아직 대회 주최측에 한국의 수용 여부는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급해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일본지사장인 짐 스몰은 조 부장과 대화를 원하며 숙소 호텔 방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조 부장이 "할 말이 없다. 피곤하다"며 거절을 하자 짐 스몰 지사장은 방으로 쳐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마주 앉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짐 스몰 지사장은 "중계방송사와 계약 관계 때문에 일정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팀이 이해해 달라"며 사정했다. 그는 '주최측이 ESPN과 중계권을 계약하면서 방송사에 경기 일정을 보장한다'는 계약조항 때문에 방송사에서 요구해올 경우 거절하기가 힘들다고 한국측에 설명했다. 스몰 지사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조 부장은 "당신네 처지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국제대회다. 미국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하려면 무엇 때문에 나머지 15개국을 불렀느냐"고 정중하게 따졌다. 그러자 스몰 지사장은 더 이상 설득이 무리라고 판단한 듯 조용히 일어섰다는 것이 조 부장의 전언이다. 이렇게 해서 중계방송으로 인한 한국팀의 경기 일정 변경은 없었던 일이 됐다. 조희준 국제부장이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한 밤의 담판 승부에서 완승을 거둔 것이었다. 사상 최초의 야구월드컵인 이번 대회의 세계적인 흥행을 위해서는 미국만을 우선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을 '들러리' 취급한다면 4년 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요청에 부응해 대회에 순순히 나설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sun@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