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상병 5호봉이랍니다".
지난 12일 2006년 K리그 개막전이 열린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불사조 상병' 정경호(26.광주 상무)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일.이등병 무리들이 훈련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 요란스럽게 선수단 버스를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으로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채 느릿한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꺾인 상병' 정경호였다.
지난 2004년 11월 상무에 입대한 정경호는 '친정팀' 울산 현대와 개막전을 치르기 위해 오랜만에 울산 구장에 왔다.
복무 개월수를 묻자 "이제 상병 5호봉이죠"라고 웃어넘긴 그에게 '이제 단체 짐은 들지 않느냐'고 묻자 "저도 (일.이등병 때) 다 했습니다"라는 당연한 말이 되돌아왔다.
진급한 지 5개월차임을 뜻하는 상병 5호봉. '꺾인 상병'은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무리에서 후임들을 이끄는 실무 책임자격의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초 '본프레레호' 시절 당시 병장이었던 이동국(27.포항) 곁에서 군기가 바짝 든 채 얼어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오히려 넘치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올 11월 제대해 울산으로 복귀할 예정인 그는 간만에 울산 관계자를 만나 얘기 나누더니 한바탕 웃어 제꼈다. "이제 저는 신경도 안쓰나봐요. 요샌 연락도 안해요".
사실 그는 지난 2004년 와일드 카드로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메달권에 들면 군면제를 받아 힘차게 나래를 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8강 문턱에서 좌절, 결국 그는 그해 11월 곧바로 입대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올 초 '아드보카트호'의 40여 일간의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해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내며 설기현(27.울버햄튼), 박주영(21.FC서울) 등과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현재 상종가를 치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으로부터는 "잘 하고 있다. 공격은 물론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라. 마음껏 많이 움직여라"는 칭찬성 주문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전훈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은 게 큰 수확입니다. 여유가 많이 생겼다라고 해야 할까요"라고 전훈을 되돌아봤다.
광주의 이강조 감독도 '정경호 칭찬 대열'에 합류했다.
"(정)경호는 돌파가 좋고 결정적인 찬스에서 수비수를 제치는 능력도 향상되고 있습니다. 마무리 능력만 보완한다면 대표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칭찬하고 있잖습니까".
그는 '꺾인 상병'으로서 군기는 다소 풀어졌지만 그라운드에서는 아드보카트호에서 그러했듯 '불사조' 기질을 유감없이 뽐냈다.
허벅지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날 차철호(26)와 투톱을 이뤄 풀타임 출전해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후반 32분에는 같은 '울산맨' 이진호(22)에 정확한 2대1 패스를 전달, 날카로운 슈팅을 유도하는 등 친정팀 울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iam905@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