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 토네이도 투구폼'으로 일본을 한 번 더 넘는다.
한국의 WBC 4강 티켓이 걸려 있는 16일 일본전 선발로 박찬호가 나선다. 뒤는 구대성이 이어줄 가능성이 높다.
구대성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 킬러다. 시드니올림픽 예선서 위기에 빠진 정민태를 1회 구원해 6이닝 6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한국의 연장 10회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동메달을 놓고 겨뤘던 3,4위전에서는 5피안타 3볼넷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뒀다. 당시 11명의 일본 타자들이 삼진으로 타석에서 쫓겨났다.
WBC 아시아라운드 때도 구대성의 진가는 또 한 번 발휘됐다. 아시아라운드 1위를 다투던 지난 5일 일본전 1-2로 뒤지던 7회 무사 1루에서 등판, 2이닝 동안 삼진 2개를 섞어 6명의 타자를 모조리 범퇴시켰다. 그 사이 이승엽의 2점 홈런이 터져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도 맛봤다.
특히 7회 1루 주자 이치로를 꼼짝 못하게 견제하면서도 니시오카의 두 번에 걸친 번트 시도를 파울 볼이 되게 만든 위력적인 피칭이 돋보였다. 노련한 구대성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일본전뿐 아니다. 구대성은 이번 WBC에서 ‘재발견’ 혹은 ‘재평가’라는 말을 들을 만할 정도로 빼어난 투구를 보이고 있다. 일본전에 앞서 8강리그 진출이 걸려있던 대만전에서도 2-0으로 앞서 있던 6회 1사 2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아웃 카운트 2개를 잘 잡아냈다.
8강리그에서도 마찬가지. 멕시코와 첫 경기 2-1로 앞선 6회 등판, 1⅔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잘 넘겼다. 2사 후 안타 하나씩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고 상대 공격을 끊어냈다.
지난 14일 미국전에서는 3이닝이나 던지는 역투였다. 4번째 투수로 5회 1사 1,2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는 미국이 자랑하는 치퍼 존스였지만 간단하게 유격수 앞 병살타를 유도해 냈다. 6-1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중반이었으므로 2~3점 추격 당한다면 결과는 알 수 없는 장면이어서 구대성의 호투가 빛났다.
7회 2사 1,2루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상대할 때는 구대성의 배짱이 어떤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선동렬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더 던지겠다"고 말하고 빗맞은 2루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3이닝 무실점 역투였다.
이런 구대성의 활약을 한국 선동렬 코치는 “지금까지 가장 만족스럽게 던진 투수”라는 말로 평가해 줬다.
이번 WBC에 들어서 구대성은 두 가지 투구 폼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시절부터 구대성은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서 오른쪽 어깨를 1루 쪽으로 약간 틀어 던지는 투구 폼을 사용했다.
2001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 진출한 뒤에도 이런 투구 폼이 화제가 됐다. 타자들의 입장에서는 구대성이 마치 볼을 숨기고 있다 던지는 것처럼 보이므로 그만큼 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투수로서는 그만큼 유리한 셈이다. 특히 왼손 타자의 경우 가뜩이나 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은데 ‘숨기기’까지 하니 공략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릭스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2004년, 시범경기에 나서는 구대성의 어깨가 더욱 돌아가고 있었다.
“구위가 떨어져서 이제 숨기려고만 하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구대성은 “(한국에서 보다)많이 돌아가나. 하다 보니깐 그렇게 됐다”고 대답했다. 당시 일본 기자들도 “작년보다 더 많이 돌린다”고 말하며 구대성에게 “좌타자 대응용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번 WBC에서 구대성은 극단적으로 몸을 틀어 마치 중견수 이종범과 눈을 마주친 다음 볼을 던지는 투구 폼과 1루수 이승엽과 눈 맞춤하는 데서 끝나는 두 가지 폼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의 토네이도와 비견할 수 있는 투구 폼이다.
미국전 8회 치퍼 존스에게 우전 안타를 맞았을 때는 ‘이종범 눈맞춤 폼’이었고 다음 타자 제이슨 베리텍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을 때는 ‘이승엽 눈맞춤 폼’이었다.
단순히 상체를 돌림으로써 타자에게 볼을 보는 시간을 빼앗자는 의도 외에 상체를 돌리는 시간에 변화를 줌으로써 타이밍도 빼앗으려는 전략이다. 타자로서는 가뜩이나 볼을 쳐다볼 시간도 없는데 리듬까지 빼앗기는 이중고를 안게 된다.
구대성이 현대와 스프링캠프를 함께 하면서 새로 익힌 스트레이트 체인지업과 이 변형 투구폼이 WBC에서 구대성을 돋보이게 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구대성의 투구폼에 얽이 사연 한 가지. 구대성에게 이런 독특한 투구폼을 가르쳐준 이는 현재 LG 트윈스 스카우트팀 이효봉 과장의 부친 고(故) 이성규 씨다. 야구 선수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독학으로 야구 이론에 통달한 방송 해설자였던 이성규 씨는 우선 아들에게 어깨를 트는 투구 폼을 가르쳤다. 그 다음 제자가 아들의 대전고 후배 구대성이었다.
고교 시절 장래가 촉망됐던 이효봉 과장은 고교 때 유급, 프로 입단 후 부상 등으로 부친의 꿈을 다 이루지는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고 이후 야구 기자, 야구 해설자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정말 지독하게 야구에 파고 들어 여러 권의 역서를 내고 지방 라디오 방송국의 해설자로도 활약했던 이성규 씨의 꿈은 구대성에게서 활짝 피었고 일본 미국을 이기는 감격을 온 국민에게 주었다.
구대성이 일본을 다시 한 번 누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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