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일본전 선발로 나오는 이유는?
OSEN 기자
발행 2006.03.15 17: 43

김인식 감독이 16일(이하 한국시간)열리는 WBC 8강리그 일본과 마지막 경기에 박찬호를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상상을 넘는 강수다.
2승을 거두고 있는 한국은 일본전에서 6실점 이하로만 패하면 4강에 올라갈 수 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 그런데도 한국 마운드의 자존심 박찬호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이건 확실히 ‘조금만 지자’가 아니라 ‘꼭 이기자’는 카드다.
먼저 김인식 감독 스스로 밝힌 이유는 이렇다. “이번 대회는 사실상 토너먼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일본전까지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 게임만 지고 탈락할 수도 있다”.
김인식 감독이 밝힌 이유 말고 다른 것은 없는 걸까. 김인식 감독처럼 수가 깊은 사령탑이 8강리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이런 전제라면 그림이 그려진다.
이번 대회는 2개조로 나누어 8강리그를 벌인 다음 상위 2개 팀이 4강 토너먼트를 벌이게 돼 있다. 통상적인 방식인 크로스 토너먼트가 아니라 한국이 속한 1조 1,2위 팀끼리 19일 준결승전을 벌이게 된다. 만약 한국이 일본에 6점 이하의 실점으로 패하면 두 나라는 결승전 티켓을 놓고 준결승서 또 맞붙게 되는 상황이 온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에 이긴다면 객관적인 전력상 미국이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멕시코와 한 경기를 남겨 놓고 있지만 멕시코는 이미 4강 탈락이 확정됐다. 1라운드에서도 미국이 2-0으로 승리했다. 미국이 멕시코에 이긴다면 2승 1패로 한국과 준결승전을 벌이게 된다.
일본이 준결승전에 올라오면 예상되는 선발 투수는 우에하라다. 미국이라면 제이크 피비다. 둘 모두 만만치 않은 투수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 구위는 우에하라가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둘은 지난 13일 선발 맞대결을 벌였다. 우에하라가 미국 타선에 7안타를 맞기는 했어도 5이닝 1실점으로 잘 버텨냈다. 반면 피비는 일본 타선에 5피안타 1볼넷으로 3실점했다.
둘의 구질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피비는 92~96마일(148~154km)의 강속구에 체인지업이 주무기이고 두 가지의 슬라이더와 컨트롤이 잘되는 커브 등을 장착하고 있다. 문제는 볼끝이 시즌 때만큼 좋지는 않다는 점이다. 거기에 일본전에서는 체인지업의 위력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반면 우에하라의 경우 직구 스피드는 피비에 밀리지만 일찍부터 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컨디션이 시즌 때에 근접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바로 우에하라가 던지는 포크볼이다.
한국 타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 구질이 바로 포크볼, 싱커 같은 떨어지는 구질이다. 특히 우에하라의 위력적인 포크볼 같은 경우 한국 타자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다. 반면 한국 타자들은 직구나 슬라이더에는 강한 면모를 갖고 있다.
비록 피비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투수이기는 하지만 우에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략이 어렵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한일전이라는 변수도 고려의 대상이다. 전통적인 라이벌인 데다 이번 WBC를 앞두고는 이치로의 ‘30년 발언’ 등으로 자극된 한국은 그야말로 하나로 뭉쳐 아시아라운드 역전승을 일궈냈다. 하지만 ‘아시아의 정상’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일본이 만만하게 물러날 리는 없다. 4강전에서 또 맞붙는다면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덤벼 올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준결승에서 다시 일본과 만나는 것은 8강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에 패하는 게 전제된다. 그러면 연패의 부담마저 갖게 된다. 자칫 '도쿄 대첩'의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미국 역시 4강전에서 한국과 만난다면 8강리그 참패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 것이다. 그래도 한국의 입장에선 여전히 ‘져도 본전’인 경기다. 한일전보다는 훨씬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이 일본의 분석력이다. 4강전에서 한국과 맞붙게 되면 같은 대회에서 3번째 만나는 셈이다. 어차피 준결승전에서도 투수들의 계투 작전으로 마운드를 운용해야 하는 한국이기 때문에 일본이 그동안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당했다고 해도 3번째쯤 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거기다 일본은 특유의 '현미경 야구'로 한국 선수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나올 확률도 크다.
물론 김인식 감독의 말대로 박찬호를 일본전 선발로 낸 이유는 여기에 올 인, 무조건 4강 티켓을 자력으로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이유 말고 더 멀리 내다보는 수가 박찬호 선발 카드에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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