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핵잠수함' 김병현(27.콜로라도)에게 멕시코전이 열린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은 '최악의 하루'였다.
일본에서 1라운드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와 2번의 연습경기서 모두 등판해 컨디션을 점검한 김병현은 이날 4회부터 불펜 대기를 지시받았다. 선발 서재응(29.LA 다저스)에 이어 마운드를 지키러 올라갈 것에 대비해 김병현은 4회부터 몸을 풀었다.
하지만 김병현에게는 등판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김병현은 그래도 언제 등판할지 몰라 계속해서 불펜에서 대기해야 했다. 결국 8회까지 몸만 푼 김병현은 이날 등판하지 않았다.
미국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특급 마무리로 불펜을 지키던 김병현으로선 불펜 대기가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4회부터 몸을 풀며 8회까지 기다리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앞선 메이저리그 팀들과의 연습경기서 2번 연속 구원 등판했던 터라 김병현으로선 약간 피곤한 상태였다.
하지만 김병현의 고행의 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멕시코전서 한국팀이 2-0으로 승리를 거둔 후 외야쪽 불펜에서 3루 한국팀 덕아웃으로 달려오자 매니저가 한 손을 치켜들었다. 매니저는 김병현을 부른 뒤 "병현아, 너하고 중근이가 도핑 테스트 선수로 지목됐다"고 알렸다.
꼼짝 없이 김병현은 2시간 여를 선수단과 떨어져 호텔에도 가지 못한 채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그 덕분에(?) 김병현은 숙소에서 식사도 못한 채 애너하임 한인타운에 있는 24시간 영업하는 한식당을 찾아 늦은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김병현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요. 4회부터 몸만 풀다가 말았어요. 8회까지 경기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니까요. 게다가 도핑 테스트까지 걸려 긴 하루였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병현은 매니저가 손을 들길래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자는 것으로 알았다고. 그런데 그게 도핑 테스트에 가야한다는 전갈이었다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김병현이 '철완'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은 그 다음 날부터였다. 전날 4이닝을 불펜 대기만 한 채 피곤하게 보냈던 김병현은 14일 미국전서 위기 상황에서 구원 등판, 팀 승리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3-1로 앞선 4회초 1사 1, 2루에서 좌완 전병두에 이어 3번째 한국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첫 타자이자 팀동료인 할러데이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다음 타자 어틀리에게 내야안타를 내줘 만루의 상황이 됐다. 그러나 다음 타자 버논 웰스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탈출했다. 5회 1사 1, 2루에서 마운드를 구대성에게 넘겼다. 1이닝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하루 휴식을 취한 김병현은 16일 일본전에도 등판, 위력을 발휘했다. 이번에도 6회 2사 1, 2루에서 등판한 김병현은 첫 타자 후쿠도메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다음타자 마쓰나카를 2루 땅볼로 요리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7회에는 삼진 2개를 곁들이며 삼자범퇴로 간단히 막고 8회 1사 후 구대성에게 공을 건넸다. 1⅔이닝 무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였다.
김병현으로선 한국대표팀이 미국으로 건너와 가진 5차례 경기서 4경기에 등판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멕시코전도 등판만 하지 않았을 뿐 등판 때보다도 더 힘든 하루를 보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김병현의 팔은 '고무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김병현은 "보직에 상관없이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겠다. 한 타자를 상대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한국팀 승리를 위해 묵묵히 힘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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