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본이야?’.
이상한 대진표가 WBC를 ‘한일시리즈’로 만들고 말았다. 17일(이한 한국시간) 8강리그 1조 마지막 경기에서 멕시코가 미국에 2-1로 승리하면서 두 팀과 똑같이 1승 2패를 기록한 일본이 실점률에서 앞서 한국가 결승 티켓을 놓고 재격돌하게 됐다.
이번 대회는 리그전으로 치른 1,2라운드와 4강 결승토너먼트로 진행된다. 1라운드는 16개팀이 4개조로 나누어 풀리그를 치렀다. 한국이 속한 A조는 모두 아시아국가들이 참여했고 나머지는 북미, 혹은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B조) 네덜란드(C조) 호주 이탈리아(D조) 등이 포함돼 있는 조합이었다. 2라운드는 다시 1라운드 A,B조에서 올라온 4개 팀이 1조, C,D 조에서 올라온 팀들은 2조를 이뤘다.
한국팬들로선 2라운드부터 아예 조편성을 다시 해서 일본과 한국이 다른 조가 돼 중남미 국가들과 한 판 승부를 겨루는 모습이 더 흥미로울 수 있었지만 2라운드 경기 장소를 애너하임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으로 잡았던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2조에 중남미 국가들만 우글거리게 된 것도 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국가 호주가 탈락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4강 대진표는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경우 흥미를 더 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크로스 토너먼트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즉 1조 1위를 차지한 한국과 2조 2위 쿠바, 1조 2위 일본과 2조 1위 푸에르토리코가 준결승전을 벌이는 것이 그동안 여러 종목의 국제경기 관례와도 들어 맞는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주최한 WBCI는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준결승전의 대진을 2라운드에서 올라온 같은 팀이 붙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 때문에 한국은 1라운드(아시아라운드)에서 만났던 일본과 2라운드에 이어 또 한 번 만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가 중심이 되어 만든 WBCI의 얄팍한 계산이 숨이 있다. 바로 미국이 준결승전에 올라갈 확률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 말고 2라운드에서 탈락한 베네수웰라 도미니카공화국은 대부분 메이저리거들로 팀을 만들 수 있는 국가들이다. 쿠바 역시 이번 대회에 스타급 선수들을 제외시키고 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마추어 최강으로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미국의 야구를 세계에 자랑한다’는 목표가 들어 있던 미국으로선 어떻게 든 결승전에 올라야 했고 이를 위해 변수가 적은 상대를 4강전에서 만나고 싶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수가 적다는 의미는 물론 미국이 이길 가능성이 보다 큰 팀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한국이나 일본을 메이저리거들로 채워진 중남미 국가들보다 쉽게 본 셈이었고 대회 참가 허용 여부를 놓고 미국 정부가 최초에 제동을 걸었던 쿠바가 미국 본토를 밟지 않고 강팀들이 즐비했던 푸에르토리코에서만 경기를 치르다 말기를 바랬던 측면도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계산은 빗나갔고 한국과 일본은 WBC를 ‘한일시리즈’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한국은 일본에 기분 좋은 2연승을 거두며 일본이 함부로 '아시아 정상'을 떠들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있음을 잘 보여줬다. 덕분에 국민들도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흥미 만점의 구연에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또 한 번 일본과 만나는 것은 지겹다. 한국과 일본이 크로스 토너먼트 방식의 준결승에서 나란히 승리,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결승에서 만나는 것과는 같은 세 번의 승부라도 의미가 다르다. 거기다 1승 2패 팀과 3승 팀이 결승 티켓을 다투는 결과가 됐다. 크로스 토너먼트였다면 준결승 상대가 우리가 거의 이겨보지 못한 아마 최강 쿠바가 됐을 것이라는 점도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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