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여’ 갈등 근간은 과도한 혈육주의
OSEN 기자
발행 2006.03.19 09: 20

인기절정의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임성한 극본, 이영희 연출)에서 시청자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던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배득(박해미 분)이 자경(윤정희 분)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유가 설명이 됐기 때문이다.
극중 배득과 자경은 계모와 양녀사이다. 하지만 배득은 자경의 행복한 결혼을 굳이 막는다. 막는 정도가 아니라 결사 반대였다. 양녀의 행복을 시기하는 계모의 심술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일각에서는 입양문화가 척박한 한국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설정이라고 비난도 했다.
18일 방송분에서 자경과 왕모(이태곤 분)가 갈등 끝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배득의 비밀도 얼마간 풀렸다.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설명이 됐다.
배득이 스스로 밝힌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수양딸과 친아들, 셋이서 살던 집에서 수양딸마저 시집가 버리면 외로워서 못 산다는 억지다. 자기변명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울고불며 “내가 아끼는 사람은 다 내 곁을 떠난다”고 말할 때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외로움이라고 강변한 이유는 이내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극중 남동생인 청하(조연우 분)와 형부 동춘(현석 분)이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말하자 얼굴이 180도 달라졌다. 결국 자경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가 생활비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배득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인 자경이 결혼해 버리면 배득이 생활전선에 나서야 할 처지였다. 카바레에 춤이나 추러 다니던 배득에게 노동을 해야 한다는 현실은 끔찍하다.
그런데 이 이유도 전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가 왕모와 자경의 결혼식 도중에 어물쩍 지나갔다. 단상에 둘이 서 있는 모습을 본 배득은 내레이션으로 이렇게 말한다. “어휴, 우리 예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저기인데 예리는 지금 얼마나 속이 쓰릴까”.
결국 배득이 자경의 결혼을 결사반대 한 근본적이 이유는 친 조카 예리(왕빛나 분)가 왕모와 결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20년을 키워 온 수양딸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엄청난 혈육주의가 갈등의 근간에 있다. 법적으로 이뤄진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 피로 이어진 이모와 조카 사이의 끈이 더 강하다는 작가의 세계관이다.
혈육주의는 영선(한혜숙 분)에게도 적용된다. 자경의 친엄마이자 왕모의 계모인 영선은 결혼식 내내 자경의 엄마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식장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배득을 응시하며 “내가 앉아야 할 자리”라고 독백했다.
주례 앞에 서 있는 신랑 신부를 보고는 “내 딸이지만 어쩜 저렇게 예쁠까”라고 혼잣말을 했다. 남편이 전처로부터 얻은 아들인 왕모에게는 감정이 전혀 일지 않았던 모양이다. 드라마가 필요로 하는 극단적인 인물, 극단적인 성격만 있었다.
우리나라에 뿌리깊은 가족주의가 드라마 전반에 깊숙이 깔려있다. 이것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갈등요소로 작용함과 동시에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장치로도 활용됐다.
문제는 이 갈등인자에 사회적 기능은 없었다는 점이다. ‘낳은 정’ 못지 않게 중요한 ‘기른 정’에 대한 가치는 없었다. 결손가정이라는 기본 구조에서 출발한 드라마이지만 ‘결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아직 없다. 결손을 치유하는 사회적, 가정적 기능에 대한 고찰도 없다. 혈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만 있을 뿐이다.
왕모와 자경의 결혼식으로 꾸며진 ‘하늘이시여’ 18일 방송분의 시청률은 33.5%(TNS 미디어 코리아)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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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시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이태곤과 윤정희.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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