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 신상우 총재는 아직도 정치인인가.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했다는 한국야구위원회 신상우 총재의 발언을 들어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 총재는 지난 22일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는 10월 이후 한일 야구대표팀 재대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우리 국민들 모두가 이번 WBC에 대해 기쁨과 함께 아쉬움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라운드와 8강리그에서 일본에 승리를 거두고도 준결승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6승 1패의 성적으로도 4강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5승 3패의 성적에 머물렀으면서도 WBC 초대 챔피언이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감정적으로 치자면 ‘당장 한일전 한 번 더 하자고 해서 일본의 코를 납짝하게 만들어 놓자’고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국민 정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프로야구를 총괄하는 KBO 총재라면 이런 점도 생각해 봤어야 한다.
우선 시기의 문제다. 신 총재는 ‘10월 이후’라고 했다. 이 말은 미안하지만 ‘4월 이후’라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일본은 이미 일본시리즈 일정이 나와 있다. 7차전까지 갈 경우 10월 29일에 끝난다. 그 이전에 끝나도 며칠은 쉬어야 국가대표팀 소집이 가능하므로 10월 개최는 불가능하다. 또 하나 작년에 시작된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가 11월 6일부터 일본서 열린다.
이미 지난해부터 4년간 개최를 조건으로 일본야구기구가 코나미 측과 스폰서 계약을 해 뒀다. 이 대회 개최에는 최소 4일이 필요하다. 11월 9일은 돼야 대회가 끝나게 된다. 스폰서 측 입장을 생각하면 일본야구기구가 10월 29일과 11월 6일 사이에 한일 국가대표간 경기를 열 가능성은 0%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신 총재가 이런 일정만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10월 이후’가 아니라 ‘11월 중순 이후’라고 해야 맞다.
혹 11월 중순 이후라고 해도 여전히 일정상 무리는 남는다. 아시아시리즈는 한국 일본 대만은 자국리그 우승팀이, 중국은 국가대표팀이 참가한다. 이번 WBC에는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 소속 선수 5명이 출전했다. 심정수 김한수 박한이가 부상 등을 이유로 고사했는데도 이 정도 숫자다. 일본의 경우 일본시리즈 우승팀 롯데 마린스에서 8명의 선수가 대표팀에 차출됐다. 만약 신 총재의 구상대로 한일 국가대표 경기가 열려도 자국 리그 우승팀 소속 선수가 많이 출전하게되는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수 입장에서는 기나긴 페넌트레이스를 거쳐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또 아시아시리즈까지 그야말로 기나긴 시즌을 보냈는데 또 한 번 국가대표라는 부담을 짊어지고 경기에 나서게 되는 셈이다. 그것도 경기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다른 경기에 비해 몇 배나 큰 상대인 일본을 겨냥해서. 혹 WBC에 출전한 선수였다면 그야말로 1년 내내 경기만 하게 되는 셈이다. 대단한 무리이고 혹사가 아닐 수 없다. 선수들의 혹사는 곧 자국리그의 수준 하락과 직결되는 문제다.
또 하나는 WBC에서 맹활약을 펼친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고려다. 박찬호 서재응 등 이미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들까지 그야말로 조국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야구의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WBC 첫 대회에서 한국야구의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자는 명분으로 봉사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또 한 번 한일전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만약 해외파들이 한일전에 불참한다면 일본을 이기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신 총재는 했는지 궁금하다.
사정이 이럼에도 WBC가 폐막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한일 재대결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인의 '한건주의적' 발언이 아닌가.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신 총재는 “야구 진흥과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하는 국민 돼지 저금통 운동 등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신 총재 자신이 참여했던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벌였던 돼지 저금통 모으기 운동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돼지 저금통이 대통령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야구진흥’을 명분으로 할 말은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구단간 공정한 경쟁을 제도적으로 보장, 관리하면서 프로야구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이익이 많이 남는 스포츠 비즈니스가 될까를 고민해야 하는 기구다. 중계권료 협상이나 돔구장 건설, 편안한 관람시설 확충도 결국은 남는 장사를 위해서 필요한 수단들이다.
그런데 돈을 내고 프로야구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국민을 향해 ‘야구의 중흥을 위해 필요하니 돼지 저금통에 돈을 모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마추어적 발상이다. ‘우리가 좋은 상품 잘 만들어 놓았으니 많이 소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이 프로의 할 일이다. 혹 신 총재는 자신이 대한야구협회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 총재는 WBC 아시아라운드에 들어가기 전 “한국이 8강에 올라가면 대표팀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발언,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언제 어디서건 생색나는 일에는 앞장서고 그게 안되면 묻어서라도 가려는 것이 정치인의 속성이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는 생색만 내서는 절대 안되는 자리다. 한국야구가 WBC에서 4강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과연 프로 스포츠로서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프로야구 24년 역사가 무색해질 일이 많다. 이 때문에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할 일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가 유능한 변호사 출신을 커미셔너에 앉히고 일본프로야구기구가 왜 행정 관료로 잔뼈가 굵은 사람을 커미셔너로 선임했는지 신 총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TV 중계권료, mlb.com 설립 등으로 구단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네고로 커미셔너의 경우 요미우리의 입김이 전체 프로야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일본에서 행정 관료 출신다운 조정 및 관리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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