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타석 2타수 2안타 3볼넷 3타점 5득점. 안타 2개는 2타점 선제 결승타와 홈런이었다.
어디다 내놓아도 돋보이는 요미우리 이승엽(30)의 지난 31일 요코하마와의 도쿄돔 개막전 성적이다. 아울러 달라진 이승엽의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던 한 판이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 3년째를 맞는 이승엽은 그만큼 적응이 돼 있었고 스스로 진화했다.
▲떨어지는 변화구에 더 이상 안속는다.
이승엽의 안타 2개는 모두 떨어지는 변화구를 공략해서 나왔다. 그것도 컨트롤이 잘못된 실투가 아니었다. 제대로 떨어지며 들어온 볼을 잘 쳐냈다.
먼저 1회 상황. 1사 주자 2,3루. 상대로서는 내야 땅볼을 유도해 홈에서 3루 주자와 승부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요코하마 투수 미우라는 초구 몸쪽에 직구 스트라이크를 넣은 후 바깥쪽 높은 쪽으로 직구 2개를 거푸 던졌다.
4구째 승부구가 몸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가 들어온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내야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선 이 구질밖에 없다. 물론 이승엽도 이를 기다렸다.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떨어지는 포크볼을 정확히 받아 쳤다.
잡아당기지 않은 타격 덕분에 볼은 중견수 옆으로 굴러가는 적시타가 됐다. 이승엽이 좌타자인 데다 잡아당기는 타격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1루쪽으로 더 다가서 있던 요코하마 2루수 다네다가 필사적으로 슬라이딩했지만 타구에 미치지 못했다.
이승엽은 ‘변화구 그것도 몸쪽’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을 예측하고 의식적으로 밀어치는 타격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구에 비해 힘이 없는 변화구라면 몸쪽 볼이라도 충분히 밀어쳐서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다.
더 좋았던 것은 홈런이었다. 5회 요코하마 사이드암 구원투수 가토는 볼카운트 1-1에서 몸쪽 낮게 들어오는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4구째 바깥쪽 직구는 파울. 볼카운트가 2-1로 유리한 상황에서 가토가 선택한 승부구는 몸쪽 떨어지는 싱커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승엽은 생각하고 있었다. 3구째 헛스윙한 쪽으로 볼이 들어오리라는 사실을.
가토의 5구째는 정확히 이승엽의 무릎 아래쪽으로 떨어지는가 싶었지만 번개 같이 나온 배트에 맞고 도쿄돔 우측 외야석까지 날아갔다.
▲너희들의 볼배합을 이제는 안다.
일본 진출 첫 해이던 2004년 이승엽은 일본 투수들의 볼배합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스리볼에서도 변화구를 던진다. 다음엔 이 공이지 하고 머리 속으로는 계산이 되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 때문에 늘 놓치고 만다”.
한국과 다르다는 것은 알면서도 막상 볼이 들어오는 순간에는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에 적응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적시타와 홈런을 날렸을 때 말고도 볼넷으로 걸어나갈 때도 상대의 볼 배합을 잘 읽고 있었다.
먼저 선두 타자로 나섰던 3회. 끈질기게 파울볼을 만들며 볼카운트 2-1에서 2-3까지 끌고간 이승엽은 10구째 바깥쪽 낮은 직구를 다시 파울로 만들었다. 11구째 바깥쪽 높은 직구가 들어오자 이승엽은 쳐다보지도 않고 서 있었다. 볼넷. 앞선 7구째부터 바깥쪽 직구만 들어왔는데도 이승엽은 11구째 역시 바깥쪽으로 들어온다는 예상을 해냈다. 한국에서라면 5개의 볼이 연속해서 바깥쪽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해 스트레이트 볼넷을 얻은 7회를 지나 마지막 타석인 8회. 초구 바깥쪽 낮은 직구(볼)를 던진 하타는 이후 몸쪽으로 연속 4개의 직구를 던졌다. 2구째 배트가 나와 파울이 됐지만 이후 2개의 볼을 잘 골랐고 5구째는 파울. 볼카운트 2-3이 됐다. 여기서 하타가 선택한 구질은 바깥쪽 커브였다. 2-3에서도 변화구를 던지는 일본 투수들다웠지만 이승엽이 속을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스스로도 믿는 파워.
WBC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점이지만 이승엽은 그 동안의 엄청난 웨이트 트레이닝과 스윙 훈련으로 파워에서도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WBC 이 후 이승엽이 홈런을 날리 때마다 빼놓지 않은 말이 “가볍게 스윙했다”였다. 가벼운 스윙이 가능한 것은 물론 힘에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파워면 가볍게 돌려도 넘어가게 돼 있다’는 믿음이 스윙에서 읽혀진다.
5회 홈런의 경우 떨어지는 변화구를 기다렸다 치는 스타일이었는데도 비거리는 130m가 나왔다. 앞선 3회에도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미우라의 2구째 무릎 쪽으로 파고드는 컷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우측 폴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8회 만들어낸 파울 볼도 좌측 폴 옆 외야펜스에 직접 맞는 큰 것이었다.
▲남아 있는 두 가지 시험.
물론 하나는 좌완 투수다. 개막전에서는 이승엽이 좌완 투수를 상대할 기회가 없었다. 이승엽이 지난해까지 소프트뱅크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한 것도 좌완 투수에 약한 면 때문이었다. 와다 스기우치 미세 가미우치 등 좌완 투수들에게 막혀 힘을 쓰지 못했다. 2년 동안 홈런 1개도 날리지 못한 구장이 바로 후쿠오카 야후돔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WBC에서 좌완 투수를 상대로 2홈런을 날려 좌완 징크스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볼 배합 하나 더. 이승엽은 그 동안 몸쪽 볼에 약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퍼시픽리그 투수들의 경우 집요하게 몸쪽 볼을 노렸다. 심지어 WBC 아시아라운드에서 만난 롯데 마린스 시절의 동료 와타나베 후지타 등도 이승엽과 만나면 일단 몸쪽에 바짝 붙는 볼을 던져놓고 투구를 이어갔다.
물론 개막전에서 요코하마 투수들도 의식적으로 몸쪽 볼을 던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위협적으로 느낄 만큼 붙이는 볼이 적었다는 점이 우선 퍼시픽리그 투수들과 달랐다. 또 하나는 몸쪽에 이은 바깥쪽 볼의 승부다. 이승엽은 몸쪽 바짝 붙는 높은 볼에 이은 바깥쪽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날 요코하마 투수들의 패턴은 이렇지 않았다. 이승엽으로선 풀지 않은 문제 하나가 남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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