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참에 한국야구 야간경기 시간을 7시로 늦춰야 된다니까"(현대 김용달 타격코치).
지난 11일 홈개막전을 앞둔 오후 6시 수원구장 현대 코치실. 몇 명의 코치들이 모여서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국민타자' 이승엽의 출전경기 TV 중계를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너나할 것 없이 요즘 일본야구에서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이승엽의 활약에 관심이 있듯 현대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승엽 경기 중계 때문에 한국야구 TV 중계가 후순위로 밀린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김용달 타격코치가 한 마디를 했다. 김 코치는 "그럼 이참에 한국야구 경기 시작 시간을 더 늦춰야겠네. 그래야 일본야구하고 조금이라도 엇갈려 갈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코치의 이 말은 비단 TV중계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 해외야구에 쏠린 국내팬들의 관심을 한국야구로 끌어모으기 위해선 '경기 시작시간 늦추기'가 필요하다는 솔직한 의견을 밝힌 것이었다.
사실 한국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샌디에이고)가 펄펄 날 때부터 팬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훨씬 좋은 구장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야구를 팬들이 TV 중계를 통해 안방에서 지켜보면서 낙후한 시설에서 열리는 한국야구에 관심이 멀어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일본야구의 이승엽까지 안방에서 직접 지켜보게 되면서 한국야구의 위기감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승엽의 주중 경기는 대부분 오후 6시에 시작해 한국야구 개시시간인 6시반과 비슷, 관중 동원은 물론 팬 관심도에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양국의 경기시간이 겹치면서 한국팬들의 관심이 한국보다는 일본쪽에 더 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런 실상을 감안할 때 대부분 오전에 경기가 열리는 미국 메이저리그보다는 오후 같은 시간대에 펼쳐지는 일본야구가 한국 프로야구에는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개막전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이 불과 4008명에 그친 현대 구단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팬들은 경기시작 후 한 시간 정도 지난 뒤에나 들어온다"며 현재 경기 개시 시간이 빠르다고 항변한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홈팬이 적은 현대는 이날 경기 시작 전에는 관중석이 '썰렁' 그 자체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자 1루쪽 홈관중석은 빈자리가 많지 않을 정도로 채워져 '시작 후 한 시간'이라는 법칙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날 잠실구장에서는 최고 인기구단 LG가 개막식 행사 때문에 경기 개시시간을 30분 늦춰 저녁 7시에 시작했지만 관중 동원은 기대에 못미쳤다. 1만 2754명이 입장하는 데 그쳤다. 이런 이유에서 '7시 경기'도 별 효과가 없었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7시 경기 개시'가 일회성이 아닌 '붙박이'로 고정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 실정에서는 6시반 경기 개시는 아직 빠른 감이 없지 않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야구장으로 오기에는 무리가 있는 경기 개시 시간이다. 더욱이 집에 가서 가족들을 데리고 함께 오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야구도 예년과는 달리 혹서기인 6월부터는 평일 경기 개시 시간을 저녁 7시로 늦췄다. 박찬호에 이어 '이승엽 바람'의 영향을 받게 된 한국야구가 흥행 열쇠의 하나로 경기 개시 시간 늦추기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이승엽 영향을 우려하기 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게 경기 개시시간을 변경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퇴근 시간은 오후 3시 전후로 빠르지만 팬들이 대중 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미국의 경우 평일 경기 시간은 이동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녁 7시 5분으로 고정돼 있고 지하철 등 대중 교통수단이 잘 갖춰진 일본에서는 저녁 6시에 대부분 경기가 열린다.
자가용 반, 대중 교통수단 반 정도인 한국야구에는 과연 몇 시가 경기 개시의 정답일까. 오는 6월 혹서기 경기 개시 시간이 적용되면 알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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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홈 개막전이 오후 7시에 시작됐으나 관중석이 절반도 차지 않은 지난 11일 잠실 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