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도 괜찮거든. 볼끝이 한기주보다 좀 더 좋아."
김인식 한화 감독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프로 첫 선발 등판, 원정 경기의 중압감도 유현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2일 잠실 LG전. 최고구속 150km의 강속구,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직구에 커브와 슬라이더를 섞어던진 유현진에게 거칠 것은 없는 듯했다.
7회까지 매 이닝 삼진을 솎아내며 LG 타선을 무력화시켰다. 고졸 신인이라곤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배짱이 두둑했다. 한 박자 빠른 승부, 이름값에 주눅들지 않고 정면 승부를 걸면서 프로 첫 선발 등판 승리라는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기록은 7⅓이닝 3피안타 볼넷 1개 무실점. 탈삼진을 무려 10개나 잡아냈다. 데뷔 첫 등판서 탈삼진 10개를 잡아낸 것은 프로 25년 역사상 이번이 4번째.
85년 3월31일 박동수(당시 롯데, 구덕 삼미전) 90년 4월11일 박동희(당시 롯데, 대구 삼성전) 2002년 4월9일 김진우(기아, 광주 현대전)에 이어 야구사의 한 장을 장식할 금자탑을 쌓았다.
이날 유현진의 투구는 1회부터 빛났다. 첫 타자 안재만, 3번 이병규를 삼진처리하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7회까지 단 2개의 안타만 내주고 LG 타선을 제압했다.
2회 선두 마해영에게 우전안타, 3회 2사 뒤 안재만에게 우중간 2루타를 허용했지만 침착한 투구로 후속타자들을 잡아냈다. 시종일관 140km대 후반에 육박하는 힘있는 직구에 LG 타자들은 번번이 밀렸다.
올해 동산고를 졸업하고 계약금 연봉 합쳐 2억 7000만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은 유현진은 이미 정규 시즌 개막 전부터 김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화 역대 신인 최고액 5억 5000만 원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한 유원상을 제치고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이날 LG전 투구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를 달성한 김 감독이 왜 그를 높이 평가했는지 입증됐다. 고졸 신인의 한 경기 등판 결과만 놓고 모든 것을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될성 부른 떡잎이란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투수를 보는 눈이 남다른 김 감독이 '선동렬 이후 최고'라는 한기주를 제쳐놓고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은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유현진은 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청룡기 준준결승 성남고전에서 무려 탈삼진을 17개나 잡아내며 완봉승을 거둔 '거물'이다.
그는 한화 입단 뒤 대선배인 구대성의 등번호 15번을 달았으나 구대성이 뉴욕 메츠에서 유턴해오면서 스스로 선배에게 번호를 선물했다. 대신 조성민이 지난해 달았던 99번을 물려받았다. 한화의 간판스타 2명의 번호를 차례로 단 '효과'가 발휘된 셈이다.
이날 유현진의 기가 막힌 호투를 등에 업은 한화는 1회 역시 신인인 연경흠의 우월 솔로홈런과 5회 조원우의 적시타로 1점씩 얻은 뒤 8회 이도형, 9회 김수연의 적시타로 쐐기점을 추가, 4-0으로 승리하며 전날 패배를 설욕했다.
LG 선발 심수창은 4⅔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덕아웃의 기대에 부응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시즌 첫 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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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