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타율 2할5리(두산)와 1할8푼4리(삼성)의 대결. 집단 타격 슬럼프에 빠진 빠진 팀간 대결은 투수전 양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격부진은 어느 한 경기를 계기로 일시에 폭발할 수 있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그래서인지 "이번 잠실 3연전 중 한 경기서 5점 이상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문 두산 감독 역시 "타선이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3연전에서 슬럼프를 탈출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두 감독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야구에서 예상은 빗나가기 일쑤이지만 14일 잠실경기는 두 감독의 경기 전 전망이 그대로 적중한 경기였다. 물론 나중에 웃은 쪽은 따로 있었다. 여기에는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오히려 승부를 가른 실질적인 '주역'이라고 할만 했다.
이날 양팀 선발은 랜들과 배영수. 지난해 한국시리즈 2차전과 똑같았다. 장소만 대구에서 잠실로 바뀌었다. 당시 삼성은 9회말 김대익의 극적인 대타 동점홈런과 김종훈의 12회 끝내기 안타로 2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싹쓸이'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6개월여만에 맞붙은 두 팀. 그러나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의 팽팽했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즌 초반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터지지 않는 답답한 타선 탓에 두 팀 모두 속을 썩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격부진에서 먼저 벗어난 팀은 두산이었다. 투수진이 믿을 만한 덕에 어느 정도 리드만 잡아주면 경기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두산 선수단에는 흐르고 있었다.
3회까지 1안타로 끌려갈 때만 해도 삼성의 페이스. 그러나 4회말 공격이 시작되면서 두산은 마치 신바람이라도 난 듯 타선이 폭발했다. 타율 4할2푼9리로 팀내 리딩히터인 안경현부터 올시즌 무안타 침묵에 빠졌던 문희성과 전상렬까지 모조리 배영수를 통타했다.
선두 안경현이 좌전안타로 포문을 열자 문희성이 시즌 15타수만에 마수걸이 중전안타로 화답했다. 타율 1할에도 못미치던 장원진은 중전 적시타로 시즌 2호 안타를 만들어냈고, 1사1,2루에선 2할타자 손시헌이 좌전안타로 문희성을 불러들였다. 전상렬은 2사 만루서 2타점 우전 적시타로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다.
두산은 4회에만 4안타와 볼넷 1개를 묶어 4득점, 전세를 단숨에 역전하며 흐름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삼성의 저력은 여전했다.
삼성은 1-4로 뒤진 7회 반격을 개시했다. 1사 뒤 박진만, 조영훈의 연속안타, 대타 김한수의 볼넷으로 만든 2사만루서 박한이의 2타점 우전 적시타로 1점차까지 추격했다. 계속된 2사 1,2루서 박종호가 친 타구는 평범한 좌익수 직선타구. 타구가 다소 빠르긴 했지만 두산 좌익수 윤승균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공이었다.
그러나 타구를 잡기 위해 전진하던 윤승균은 글러브를 갖다 대던 찰나 공을 머리 뒤로 빠트리고 말았다(사진). 조명탑 불빛에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은 결과였다. 공은 펜스까지 굴러갔고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으며 5-4 역전. 후속 양준혁은 두산 2번째 투수 김상현을 통타, 우중간을 완전히 꿰뚫는 적시 2루타로 승부를 갈랐다.
리드를 잡은 삼성은 7회 권오준, 8회에는 '철벽 마무리' 오승환을 투입, 두산의 막판 공세를 1점으로 틀어막고 6-5 승리를 확정했다. 속을 끓이던 타격 슬럼프에서 함께 탈출했지만 결과는 6개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아무도 예상치 못한 홈런이 승패를 갈랐다면 이번에는 라이트가 삼성을 도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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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