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투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후루타 감독 때문이었을까.
요미우리 이승엽(30) 야쿠르트와 2연전에서 8타석 8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7타석은 왼손 투수를 상대로 한 결과였고 나머지 한 타석은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한 결과였다. 이틀동안 삼진도 3개나 당했다.
언뜻 보면 일본 진출 첫 해인 2004년부터 따라다니던 ‘좌투수 징크스’가 살아난 것도 같다. 그러면 이것으로 이틀동안의 부진에 대한 설명이 끝난 것일까.
이승엽은 야쿠르트와 2연전에 임하기 전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37타수 16안타로 타율 4할3푼2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좌투수 상대 기록은 21타수 8안타, 타율 3할8푼1리다. 결코 ‘징크스’니 ‘약하다’는 표현을 쓸 만한 수치가 아니다. 더구나 이 때까지 올 시즌 기록한 4개의 홈런 중 2개도 좌투수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삼진을 당한 숫자도 우투수 8개, 좌투수 3개로 특별히 좌완이라서 못했다고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 두 경기 부진의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야쿠르트와 두 번째 만남이라는 전제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승엽은 18일 야쿠르트와 시즌 4차전을 시작하기 전 지난 4일부터 진구구장에서 야쿠르트와 원정 3연전을 치렀다.
야쿠르트에는 후루타 감독 겸 선수가 있다. 18일에는 직접 포수 마스크를 썼고 19일에는 덕아웃에서 경기를 지휘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선수이고 노무라 현 라쿠텐 감독의 수제자이자 노무라 이후 최고 포수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이가 바로 후루타다.
18일 경기로 돌아가 보자. 1회 이승엽은 첫 타석에서 5구째(볼카운트 2-2)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받아 쳤지만 중견수 플라이가 됐다. 타구도 정면이었지만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다. 이승엽이 자신 있게 노려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된다.
이유는 야쿠르트 좌완 선발 이시이가 던진 3구와 4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둘 모두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3구는 중간쯤 높이로 들어와 스트라이크가 선언됐고 4구째는 낮게 빠져나가는 유인구였다.
포수 마스크를 썼던 후루타 감독은 연이어 3개의 슬라이더를 요구하는 파격으로 이승엽을 헷갈리게 했다.
두 번째 타석은 그야말로 이승엽의 완패였다. 3개의 공 모두 직구. 1구 몸쪽 낮게, 2구 몸쪽 높게, 3구 바깥쪽 낮게 볼이 들어왔다. 시각적으로 타자를 최대한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코스들이었다. 더구나 볼카운트 2-0에서 슬라이더나 다른 변화구 유인구가 들어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던 이승엽에게 직구를 던지게 함으로써 그냥 서서 삼진을 당하도록 만들었다.
5회에는 집중적으로 이승엽의 몸쪽을 노렸다. 볼카운트 1-2에서 이시이가 던진 4구째 몸쪽 높은 직구를 이승엽이 밀어치는 바람에 유격수 플라이가 되고 말았다. 몸쪽으로 집중한 뒤였기 때문에 4구째는 바깥쪽, 그것도 볼카운트 상 스트라이크를 던질 확률이 높았고 이승엽도 그 쪽을 염두에 뒀으나 전혀 반대였다.
8회 마지막 타석에서는 이승엽이 빠른 볼카운트에서 공략했다. 초구 몸쪽 낮은 직구가 들어온 다음에 2구째 힘껏 잡아당기는 스윙을 했다. 하지만 볼은 바깥쪽 낮게 들어가는 슬라이더였다.
감독의 시범 때문이었을까. 19일 이승엽을 상대한 이시카와-요네노 배터리도 이승엽의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볼배합을 보였다.
1회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첫 타석에서 이승엽이 친 공은 몸쪽 슬라이더였다. 파고드는 공을 억지로 밀어친 셈이다. 이유는 앞서 3개의 볼이 모두 바깥쪽으로 들어온 슬라이더였기 때문이다. 3개의 슬라이더는 바깥쪽으로 휘거나 떨어지게 던지고 상대가 적극성을 띠게 마련인 볼카운트 1-2에서 몸쪽으로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던진 야쿠르트 선발 이시카와의 제구력이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어쨌든 볼배합에 당한 이승엽이었다.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이승엽은 전날에 이어 두 번째로 서서 삼진을 당했다. 초구 몸쪽 낮은 역회전볼(스트라이크)를 던진 이시카와는 2,3구를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승엽이 속지 않고 잘 골라내 볼카운트 1-2. 4구째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할 시점에 이시카와가 선택한 코스는 가운데에서 약간 몸쪽으로 높게 가는 볼이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이승엽이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파울. 그럼 5구째는 어디로 들어올까. 바깥쪽 변화구일 확률이 높아 보였지만 이시카와는 가운데 낮게 들어오는 역회전볼로 삼진을 잡아냈다.
이제 6회 세 번째 타석을 살펴 볼 차례다. 이승엽은 야쿠르트와 2연전에서 가장 많은 7개의 볼을 이 타석에서 맞았다. 그런데 7개 모두가 바깥쪽으로 들어갔다. 볼카운트 2-1로 이승엽이 몰렸고 5구, 6구 바깥쪽으로 들어온 슬라이더를 모두 걷어내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7구째 108km짜리 느린 체인지업이 바깥쪽 낮게 떨어지자 이승엽의 배트가 헛돌고 말았다. 이제나 저제나 몸쪽 공략을 기다렸던 타자의 힘을 빼놓는 볼배합이었다.
이승엽은 8회 마지막 타석에서야 오른손 투수 기다를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크볼이 문제였다. 초구 몸쪽에 슬라이더(볼)를 붙인 뒤 기다는 연속해서 4개의 포크볼만 던졌다. 그것도 높이와 코스가 다르게 들어오는 통에 이승엽은 잡아당기는 스윙 대신 맞히기에 나섰고 결국 한복판에 들어온 포크볼을 밀어서 3루수 플라이가 되고 말았다.
이승엽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인 하이-아웃 로’라는 것을 이제는 센트럴리그 투수들도 어느 정도는 안다. 몸쪽 높은 볼로 위협을 주거나 파울을 유도한 다음 투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볼로 헛스윙을 유도한다는 의미다. 퍼시픽리그에서 뛰었던 지난 2년간의 경우 조지마의 리드를 받는 소프트뱅크 투수들이 이 원리에 입각해서 이승엽을 가장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몸쪽으로 바짝 볼을 붙여서 위협을 주거나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공을 던진다 (이 경우 이승엽의 배트가 나가도 십중팔구는 파울이 된다). 타자가 불리한 카운트가 되면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볼을 던진다. 이 때는 십중팔구 볼이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다 배트에 걸리면 안타를 맞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 이승엽은 센트럴리그 투수들을 상대로 이 공식을 무력화시켰다. 몸쪽에서 아웃 코스로 옮겨갈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아예 투스트라이크가 되기 전 몸쪽 볼을 쳐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개입돼 있었다. 퍼시픽리그 투수들과 달리 센트럴리그 투수들은 몸쪽이나 바깥쪽 모두 가능하면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예측한 코스에 그것도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는데 이승엽 정도의 타자가 안타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18,19일 야쿠르트는 이승엽을 상대로 코스 예측이 빗나가게 하는 볼배합으로 완승을 거뒀다. 이제는 바깥쪽이겠지 하는 타이밍에도 몸쪽으로 던졌거나 그 반대로 볼배합을 했다.
과연 다른 팀들이 이승엽을 상대할 때는 어떨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그나마 아직은 퍼시픽리그(특히 소프트뱅크) 투수들에 비해 센트럴리그 투수들은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진다는 것이 다행이다.
한편 이승엽은 19일 경기를 마친 후 “타격감은 괜찮다. 다만 타격시 밸런스가 조금 나빠진 것 같다. 20일 경기가 없는 만큼 잘 쉬고 21일부터 열리는 한신과 3연전에서 힘을 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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