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승리는 챙기지 못했지만 25일(한국시간) 애리조나전은 박찬호(33.샌디에이고)의 부활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경기였다.
이날 박찬호는 투구수 조절에 성공하며 8⅔이닝 동안 공 119개를 던졌다. 이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79개에 해당할 정도로 제구력이 돋보였다. 효과적인 투구수 관리는 결국 타자를 쉽게 잡아내는 능력과 같은 말이다.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박자 빠른 승부로 타자를 공력하는 전략이 이날 경기서 특히 빛났다. 그 결과 5회 선두 루이스 곤살레스에게 우중간 깊숙한 2루타를 허용할 때까지 12명의 타자를 연속해서 잡아내는 위력을 발휘했다.
7회와 8회 잇따라 득점권에 진루를 허용하는 등 위기에 몰렸음에도 이날 경기서 '롱런'할 수 있었던 요인이 여기에 있다. 1-2로 끌려가던 8회 연속안타로 1사 2,3루에 몰렸을 때는 타이밍상 교체가 유력했지만 브루스 보치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투구수가 100개에 못미친 데다 박찬호의 노련미와 경험으로 봤을 때 충분히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돈독했기 때문이다. 1-3으로 패색이 짙은 9회에도 박찬호를 빼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날 투구로 박찬호는 지난 20일 콜로라도 원정경기 이후 2경기 연속 7이닝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선발투수가 7이닝을 책임져주면 부동의 에이스로 여겨진다.
흔히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만 해주면 투수로선 성공이라고 하지만 로테이션의 상위 순번을 맡으려면 7이닝 정도는 던져줘야 한다.
이 기준에 비쳐보면 박찬호는 빅리그서 손꼽히는 선발투수였다는 점이 증명된다. 풀타임 선발로 자리를 굳힌 지난 1998년 이후 3번이나 시즌 평균 7이닝(7회 상황서 교체 포함) 투구를 기록했다. 6이닝 투구까지 합치면 그 수는 8번으로 늘어난다.
다만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2002년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등판 횟수와 이닝수가 현저히 낮아지면서 '7이닝 투수'의 위상에 큰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그러나 샌디에이고로 이적해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올 한 해 박찬호는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면모를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다. 첫 선발 등판인 지난 15일 애틀랜타 원정서 5이닝을 던지며 감을 잡더니 콜로라도전 7회, 그리고 이번 애리조나전에선 9회 2사까지 마운드를 지켜주며 샌디에이고 투수진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비록 산뜻한 승리도, 시즌 첫 완투도 기록했지 못했지만 이날 패배가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workhors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