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과 선발을 오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체력적인 부담은 물론 투구 템포와 리듬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긴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선발과 짧은 이닝에 주력해야 하는 중간계투의 대응법은 다르다.
그러나 이혜천은 일반적인 투수들과 다른 유형이다. 5일 로테이션을 꼬박꼬박 지키는 게 고역이라고 한다. 가능하면 자주 마운드에 올라 타자를 상대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그는 저돌적이고 의욕적이다.
그런 이혜천이 올 시즌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불펜과 선발에서 모두 제 몫을 해내며 두산 마운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3일 잠실 KIA전에서도 그만의 장점이 눈부시게 발휘됐다.
이날 이혜천은 8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KIA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볼넷이 5개로 다소 많았지만 삼진을 7개나 빼앗았다.
선발로 등판하지 않는 경기에서도 그는 놀지 않는다. 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 등판, 선발과 마무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낸다. 왼손 타자 전문 '스페셜리스트'가 선발로 나서지 않을 때 그의 보직이다. 올시즌 중간계투로 등판한 6경기 중 1경기를 제외한 전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어떤 임무를 맡기든 척척 소화해내는 그는 이날 KIA전에서도 김경문 감독과 윤석환 투수코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가 저절로 나올 만한 투구로 마운드를 지켰다.
출발부터 산뜻했다. 1회부터 3회까지 9명을 삼진 2개 곁들여 연속해서 잡아내며 기세를 올렸다. 4회에는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위기를 맞았지만 침착하게 수비를 끝냈다. 이종범 이재주 손지환을 볼넷으로 내보낸 2사만루에서 서브넥을 초구에 투수 땅볼로 잡아내고 가장 큰 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는 탄탄대로. 주자를 내보낸 5회와 6회를 어렵지 않게 지나친 그는 7회 서브넥과 신동주를 연속 삼진처리하는 등 3자범퇴로 무실점 행진을 이었다.
이날 호투 뒤에는 수비의 도움도 있었다. 1사 뒤 김상훈을 볼넷으로 내보낸 5회. 좌타자 이용규가 친 타구는 전진수비한 유격수 손시헌의 키를 넘어가는 듯했지만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도 뒤로 넘어지며 공을 잡아낸 손시헌의 호수비로 피칭에 탄력을 받았다.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두산 타선이 점수를 뽑지 못한 탓에 이혜천은 승리를 추가하진 못했다. 여전히 1승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날의 기가 막힌 호투로 시즌 방어율은 1.61(종전 2.51)까지 내려갔다.
승리 기회가 많지 않은 스윙맨의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어도 꽤나 없었던 셈.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마운드에 올라 투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나날이 높아지는 점도 승리 못지 않은 수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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