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 영화전문기자]9년. 한석규(42)가 이문식(39)을 알아보는데 걸린 시간은 강산이 한번 바뀔 세월에서 딱 1년 부족했다.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두 배우는 처음 만났다. ‘은행나무 침대’(1996) ‘닥터 봉’(1995)으로 벌써 스타덤에 오른 한석규는 주인공 막동 역, 단역 두 번 출연한 경력이 고작이던 이문식은 극중 이름도 없이 ‘불량배 2’로 불렸다. 그나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임문식’으로 잘못 표기돼 괜히 마음만 상했다.
제대한 막동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안. 동네 건달들이 그에게 시비를 거는 와중에 아직 곱상한 이문식도 끼어 있다. 한석규와 잠시 눈싸움을 펼치지만 두 배우의 첫 만남은 거기까지. ‘초록 물고기’에서 연기력을 확실히 인정받은 한석규는 같은 해 ‘넘버3’ ‘접속’에 이어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와 ‘쉬리’로 배우 인생에 정점을 찍는다.
출발선은 달랐지만 이문식도 ‘초록 물고기’ 이후 부지런히 뛰었다. 온갖 잡역을 도맡다가 2001년 코미디 ‘달마야 놀자’에서 대봉 스님으로 드디어 조연급 대열로 올라섰다. 주로 불량배, 사기꾼, 조폭 등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굳혀가던 그는 2004년 화제작 ‘범죄의 재구성’ 떠벌이 얼매 역으로 영화 관계자, 관객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국영화의 붐이 일었고 배우 기근 속에서 주연의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2005년 ‘마파도’에서 이정진과 함께 첫 공동주연을 맡았고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이제부터는 순풍에 돛단 배다. 11일 개봉한 코미디 ‘공필두’에서 생애 첫 단독주연을 했고, 꽃미남 이준기와 ‘플라이 대디’를 찍는 중이다.
무엇보다 한석규와 이문식의 관계를 9년만에 뽕밭을 푸른 바다로 만든 건 31일 개봉할 코믹 잔혹극 ‘구타유발자들’이다. 달리는 열차안에서 눈길을 마주했던 주연 배우와 불량배2는 이제 어깨를 같이 해서 한 영화를 찍었다. 이문식은 순진한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폭력을 행사하는 동네 건달 ‘봉연’이고 한석규는 시골 불량경찰로 사건의 발단과 반전을 책임진다.
이문식은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한석규 선배한테 이번 영화를 같이 찍으며 ‘초록 물고기’ 때 얘기를 했더니 ‘아! 생각난다’고 했다. 그런데 주연 배우는 같이 연기하는 배우가 수십명이 넘으니까 아마도 내 얼굴을 기억했다기 보다는 그 장면을 떠올린 것같더라”며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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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들’에 함께 출연한 이문식과 한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