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영향으로 하늘이 잔뜩 흐려있던 19일 오후. 희뿌연 수평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충남 태안군 안면읍 두산염전의 한 소금창고로 향했다.
서울에서 차로 꼬박 3시간. 넓은 평야 인적 드문 시골 논밭 사이로 곳곳에 펼쳐진 염전 한 가운데 낡은 목재로 겉을 세우고 녹이 슬어 핏빛 띤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소금창고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홀로 서있다.
허름하게 낡아 언제 떨어질지 모를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 창고. 빛이 나무 벽 뒤로 숨어 시야가 좁아진 그곳에 낯익은 한 여자가 커다랗고 힘이 들어간 눈으로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서있다.
그녀의 굳게 닫힌 입술은 이내 벌어져 파르르 떨리고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무언가 단단히 공포에 질린 그녀는 곧 숨이 가빠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만다.
입 밖으로 그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사람마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녀. 공포영화 ‘아랑’(안상훈 감독, 더 드림&픽쳐스 제작)의 여주인공 배우 송윤아다.
‘아랑’은 올 여름 국내 공포영화의 첫 문을 여는 작품이다. 신예 이동욱과 함께 송윤아가 주연을 맡아 올 여름 스크린을 찾는다. ‘아랑’에서 강력계 여형사로 분한 송윤아는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속으로는 연약한 내면의 슬픔을 감춘 인물이다. 형사라는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듯이 송윤아의 터프하고 강인한 모습을 상상했지만 예상외다.
이런 의구심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송윤아는 처음부터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여형사라고 하면 당연하듯이 터프하고 중성적이고 와일드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하지만 여형사도 일상생활에서는 평범하고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직업적 특성을 발휘할 것”이라면서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가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정적인 이미지를 새 영화에서도 살리려 했다는 송윤아는 “기존 작품들에서 묘사된 여형사의 강인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었다”면서 여형사라는 설정은 공포영화의 한 부분에 불구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 장면 한 장면 만들어가는 공포영화이다 보니 여형사가 주제가 아닌 영화 뒤로 물러서 있다는 것이다.
신참형사 역을 맡은 이동욱 역시 “형사라는 설정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거친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 공포영화의 몰입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부언 설명한다.
‘아랑’은 경남 밀양의 공포설화를 모티브로 했다. 정조를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아리따운 처녀 아랑이 죽은 뒤 원혼이 부임하는 후임부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내용. 그러던 중 용감한 한 부사가 부임해 아랑의 사연을 듣고 범인을 찾아 한을 풀어준다는 이야기를 뼈대로 하고 있다.
영화는 이 공포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강력계 고참형사 송윤아와 신참형사 이동욱이 억울하게 죽은 소녀귀신을 만나 벌어지는 공포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빤한 내용이 되지 않으려면 영화에 색다른 외적인 요소가 가미돼야 한다.
이런 위험성을 송윤아는 연기로 극복하겠다고 설명한다. “한 작품을 할 때는 연기자의 몫이 크다. 많이 반복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공포영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 송윤아는 “감독이 원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몸짓과 말 등으로 캐릭터를 살리려 했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감독의 많은 요구에 배우로서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앞 뒤 상황이 끊어져 난감하거나 또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생각해보니 큰 덩어리로 그림이 그려져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송윤아와 이동욱이 연기에 중점을 둬 올 여름 스크린에서 공포 분위기를 일으킬 ‘아랑’은 현재 90%이상 촬영이 끝났다. 다음달 29일 개봉해 올 여름 처음 국내 공포영화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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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읍 두산염전에서 진행된 영화 ‘아랑’의 예고편 촬영 현장공개 행사가 있었다. 영화의 주연배우인 송윤아와 이동욱이 연기에 몰두하고 있다./주지영 기자 jj0jj0@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