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의 웃음은 해학과 풍자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 익살스러운 모습이나 무엇에 빗대어 재치있게 깨우치거나 비판하는데서 나왔다는 말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같을 수 없기에 개그의 가치판단이 사뭇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호통개그’로 인기를 모았던 박명수가 내세우는 ‘못된개그’는 말 그대로 못됐다.
‘호통개그’는 상대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과장스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방귀 낀 놈이 오히려 성낸다’는 속담이나 ‘적반하장’이라는 4자성어를 비춰봐도 ‘호통개그’는 충분히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준다.
하지만 최근 MBC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에 등장하는‘못된개그’는 어느 기준을 가지고 이해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 왜냐하면 ‘못된개그’는 상대방의 약점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언급하는 고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설사 웃음이 나온다고 해도 그 웃음은 ‘어이없다’는 반응일 뿐이다.
‘못된개그’가 풍자와 비슷한 개념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못된개그’는 말 그대로 못됐다. 풍자가 비합리적인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못된개그’는 그저 단순 사실만을 폭로할 뿐이다. ‘못된개그’에 당한 장본인들도 어이없어 하고 보는 사람들도 웃지 않는다. 그래서 자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못된개그’를 개그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지 않다. ‘못된개그’라 이름 붙은 그 모습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그만하라’는 불만을 내놓는다. 그저 폭로에 가까운 ‘못된개그’를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우습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나 막무가내식 폭로를 일삼는 ‘못된개그’가 브라운관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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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