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 영화전문기자]블록버스터의 잇달은 흥행 대박에 ‘한국영화 위기론’이 냄비에서 죽 끓듯 끓고 있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움직임도 다시 힘을 얻는 분위기다.
며칠전 모 일간지는 블로그 칼럼을 통해 “한국 영화 ‘왕의 남자’가 살린 한 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외화 ‘다빈치 코드’가 죽이고 있다”고 요즘 정부 경제부처의 불편한 심기를 적었다. 기사에 따르면 ‘왕의 남자’ 돌풍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밀어붙일수 있었는데 불과 몇 달만에 할리우드 영화가 국산 영화를 압도해 경제부처 관리들이 한숨을 내쉰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정말 위기에 빠진걸까?
3일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3’ 개봉이후 4주 연속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관객들을 독점하다시피 끌어들였다. ‘미션 임파서블3’는 개봉 4주째 480만명을 동원했고, 18일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의 ‘다빈치 코드’도 2주째 240만명을 넘어서며 순항중이다. 5월 셋째주 두 영화의 주말 극장 점유율은 80%(‘다빈치 코드’ 52.9%, ‘미션 임파서블3’ 27%)로 절정에 달했다.
이같은 외화의 초강세는 저들 입장에서 보면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단비나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는 지난해 12월 셋째주 장동건 이정재 주연의 ‘태풍’을 시작으로 4월 마지막주 ‘사생결단’까지 20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이 기간 동안 한국영화 최다관객 기록을 새로 쓴 ‘왕의 남자’가 4회, ‘태풍’ ‘투사부일체’ ‘음란서생’ ‘청춘만화’ ‘달콤, 살벌한 연인’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2회 이상 1위(영화진흥위원회 자료) 자리에 올랐다.
정부 관리들의 걱정과 달리,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왕의 남자’ 한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제작, 연출, 배우 등 넓어진 영화계 저변에서 비롯된 사실을 알수 있다.
또 한국 영화의 강세 현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5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전년 55.2%와 큰 변화 없는 55.1%를 유지하며 3년 연속 우위를 지켰다. 자료를 집계한 아이엠픽처스는 ‘한국영화가 겨울, 여름 성수기 시장인 1월과 7월에 할리우드 영화들의 영향으로 25.3%, 28.2%까지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였지만 8월 이후 ’웰컴 투 동막골‘, ’가문의 위기‘, ’너는 내 운명‘ 등의 흥행 성공으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까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한 두달의 흥행 결과로 영화 시장 전체를 평가하기 힘든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영화의 소비 주체는 관객이다. 극장가는 관객들의 입맛에 따라 영화별 흥행 성적이 춤을 춘다. 5월 한달동안은 ‘미션 임파서블3’ ‘다빈치 코드’ 등 단 두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관객들의 몰표가 쏟아졌다. 소비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소비 행위를 하는데 ‘한국영화 위기’를 운운하며 제한을 두자는 건 어불성설 아닐까. 관객은 소비자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볼 당연한 권리가 있다.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이전에 몇가지 든든한 보호막을 갖고 있다. 첫째는 더빙, 자막없이 우리 말로 듣고 볼수 있는 강점이다. 미국 시장에서 외국 영화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은 바로 언어다. 미국 관객들은 웬만한 영화 아니면 자막 처리된 스크린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해외에서 눈독들인 작품들을 수입하기 보다 미국판 리메이크 영화로 개봉한다.
또 하나 한민족의 정서는 한국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다. ‘왕의 남자’ ‘음란서생’ 같은 사극 뿐 아니라 ‘친구’ ‘사생결단’ ‘웰컴 투 동막골’ 등 한국 영화 아니면 담을수 없는 소재란 무궁 무진하다. 양식이 범람한다고 해서 김치, 깍두기 없이 살수있는 우리 민족이 아니다.
영화의 홍보 마케팅도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에 굳이 밀릴 이유는 없다. 출연 배우들은 개봉 한달전부터 TV의 각종 쇼프로 등에서 자신들의 영화를 알린다. 최근 ‘무인 곽원갑’ 개봉을 앞두고 이연걸이 한국을 방문한 것처럼, 외화도 스타 마케팅을 펼칠수는 있지만 한국 영화처럼 시 공간적 제한을 덜받기란 애시당초 무리다.
블록버스트가 성공하는 이유는 자국민 뿐 아니라 전세계 관객들이 공유할 코드만을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작 SF나 판타지, 액션물을 주된 소재로 택하는 이유다. 이외에 할리우드에서 비평과 흥행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둔 작품들도 한국 시장에서는 힘 한번 못쓰고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드라마나 코미디 장르는 한국 시장이 넘기 힘든 벽이다. ‘구세주’ ‘흡혈형사 나도열’ 등의 코미디가 우리네 웃음샘을 더 자극하지, ‘덤 앤 더머’ 스타일의 미국식 유머는 관객 반응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 자기네 인종간의 갈등을 다룬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크래쉬’는 한국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블록버스터 마저도 장마다 꼴뚜기처럼 흥행 대박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영화 제작이 사실상 누구도 흥행을 점칠수 없는 도박에 가까운 까닭이다. 올 블록버스트의 원 투 펀치인 ‘미션 임파서블3’와 ‘다빈치코드’가 대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이어질 ‘포세이돈’ ‘수퍼맨 리턴즈’ ‘엑스맨3’ 등도 대박을 이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거꾸로 잔뜩 위축된 한국 영화들이 하반기 내내 죽을 쑤리란 보장도 물론 없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봉준호 감독의 ‘괴물’, 최동훈 감독의 ‘타짜’ 등 기대작들이 많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하반기에 한국 영화의 독주가 재현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 몇편의 흥행 결과를 놓고 ‘한국 영화 위기론’ ‘한국 영화 어른론’ 등으로 맞서며 스크린쿼터의 역할을 제 멋대로 규정하는 건 관객(소비자)들에 대한 기만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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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빈치 코드’와 ‘미션 임파서블3’의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