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 영화전문기자] 전국 300개 이상 스크린을 확보하는 블록버스터나 메이저 배급사의 물량 공급에 맞서 단관 장기 상영을 택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18일 ‘다빈치 코드’와 같은 날 개봉하면서 고전을 면치못했던 가족 드라마 ‘가족의 탄생’은 압구정 스폰지 하우스(1일)와 종로 시네코아(8일)에서 장기 상영에 돌입했다. 문소리 고두심 공효진 엄태웅 봉태규 정유미 등 연기파들이 대거 출연한 이 영화는 20여년 세월에 걸쳐 질긴 인연으로 연결되는 3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수상작인 ‘카포티’는 지난달 25일 CGV 인디영화관(강변, 상암, 서면, 인천)에서 단독 개봉하며 처음부터 소수 스크린에서 길게 상영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션 임파서블 3’ ‘다빈치 코드’ ‘포세이돈’ 등 블록버스터들의 틈바구니에서 휴일의 저녁 프라임 타임에는 연속 매진을 기록하는 등 작지만 성공적인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카포티’는 팩션소설의 효시인 ‘인 콜드 블러드’의 천재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인생을 리얼하게 묘사한 영화. 1959년 미국 캔자스주의 한 농장에서 일가족 4명을 잔인하게 죽인 두명의 사형수를 인터뷰하던 작가 카포티가 이들의 사연을 토태로 논픽션 소설을 쓰게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고뇌, 갈등 등이 다큐멘타리적 영상으로 펼쳐진다.
이밖에 최근 소수 스크린을 확보해 장기 상영에 들어갔던 대표적 영화들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터널 선샤인’ ‘메종 드 히미코’ ‘브로크 백 마운틴’ ‘박치기’ 등을 들수 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것이다. 장기상영을 할수 있는 극장이 아주 소수에 불과한 현실에서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봐야되는 불편까지 감수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중요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열혈 팬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6개월동안 상영하면서 일본 영화에 대한 재평가를 불렀고 짐 캐리 주연의 ‘이터널 선샤인’은 ‘가족의 탄생’처럼 100여개의 스크린으로 전국 개봉을 했다가 단관으로 옮겨 장기 상영에 들어갔다. 잦은 싸움 끝에 사랑했던 날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 연인을 좇아 자신의 기억도 없애버리는 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동성애를 주요 소재로 다룬 오다기리 죠 주연의 ‘메종 드 히미코’는 적은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10만명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소수 스크린으로 밀려난 영화라도 관객들의 오랜 사랑 속에 짭짤한 흥행 성공까지 얻을수 있다는 사실을 ‘메종 드 히미코’가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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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포티’의 스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