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주는 선수가 한 명 나와야 돼요. 신들린 듯 해주는 선수가 한 명 정도 있으면 치고 올라갈 수 있는데 참 안타깝네요".
지난 3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LG 이순철 감독은 속이 탄 듯했다. 나아질 만하면 고비를 넘지 못해 패하고, 살아날 것 같으면 침묵하는 방망이 때문에 시즌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한 달만이라도 속칭 '미친 선수'가 나타나면 팀이 연승 가도를 달릴 수 있으련만 그런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연신 피력했다.
"시오타니 유현진 이용규 이택근을 보세요. SK 한화 KIA 현대가 상승세를 타고 치고 올라설 때는 반드시 '미친 선수가 있었다고요".
이 감독의 말은 사실이다. 팀이 상승세를 타기 위해서는 어느 한 순간 예상 외의 활약을 펼쳐주는 선수가 필요하다. 야구판에서 널리 통용되는 소위 '미친X' 론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웬만한 팬이라면 한두 명이 '튀어줘야' 팀 전체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심심찮게 목격해왔다.
하지만 LG에는 그런 선수가 전무하다. 한때 안재만이 그런 역할을 맡는 듯했지만 곧바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기대를 모았던 박병호는 잠시 반짝한 뒤 2군행 짐을 쌌다.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안정됐고 매 경기 접전을 펼치지만 결정적 고비를 넘지 못해 연승을 이어가지 못하는 데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찬스에서의 집중력 부재도 결국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타자가 없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선수단의 투쟁심 약화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한두 선수의 맹활약으로 승수가 쌓여지면 선수단 전체가 분위기를 타기 마련인데 집단 슬럼프를 반복하다보니 의욕도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차피 경기는 선수가 한다. 종목을 불문하고 감독이 팀 전력 이상의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프로 스포츠 감독의 본질은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는 치어리더'라는 말이 미국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플레이어는 선수뿐'이라는 개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이 감독은 0-1로 뒤진 4회 심판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다 올 시즌 감독퇴장 1호의 불명예를 안았다. 4회말 1사 뒤 두산 정원석을 상대로 볼카운트 2-0를 만든 선발 최상덕은 3구째 바깥쪽 빠지는 공을 던졌고 정원석은 스윙을 반쯤 하다 멈췄다. 포수 조인성의 문의에 오석환 1루심이 볼을 선언하자 분을 못참고 뛰쳐나와 몸싸움을 벌이다 쫓겨난 것이다.
이 감독은 덕아웃에 들어가서도 방망이를 필드로 집어던지는 등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보기에는 다소 거칠었지만 당시 이 감독의 행동은 의도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승부가 갈릴 상황도 아니고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지도 않았지만 과장된 액션을 취함으로써 선수단 전체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이 감독이 물러나자 3루측 LG팬들은 큰 목소리로 '격려'를 보냈다. 감독의 승부욕에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LG 선수단도 긴급 미팅을 갖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잠실구장 3루측 투수들 공간에 모여있던 선수들도 일제히 야수 덕아웃으로 이동해 단합심을 과시했다.
필승의 각오를 되새긴 LG는 7회 대타 박용택의 솔로홈런으로 1점차까지 추격한 뒤 막판 역전까지 바라봤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 비록 패했지만 이날 LG의 경기력은 4회 이전보다는 4회 이후가 훨씬 나았던 게 사실이다.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필드에서 '튀는 선수'가 없어 괴로움을 토로하던 이 감독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스스로 '오버맨' 역할을 떠맡은 셈이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선수단 전체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는 탁월했다. 감독의 의도된 행동이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약발'을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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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감독이 지난 3일 판정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잠실=주지영 기자 jj0jj0@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