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철 LG 감독이 지난 5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 2년 동안 4강에 들지 못했고 올해는 최하위 추락 위기까지 몰리자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졌다. 승부욕과 자존심이 강한 이순철 감독으로서는 더 이상 팀을 끌고 가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현역 시절 ‘재간둥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야구를 잘했던 그가 LG에서 감독으로 꽃피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이순철 감독이 강조했던 '희생의 야구'가 뿌리내지지 못한 탓이 컸다.
이순철 감독은 스몰베이스볼을 추구한다. 잦은 투수 교체와 작전, 번트를 애용한다. 그래서 이 감독의 야구관에는 희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현역 시절부터 “자신을 버리고 이기기 위해서 어떤 행동과 기여를 해야 되는지 생각해야 된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가 맡았던 LG는 8개팀 가운데 가장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이는 90년대 LG 야구를 상징했던 ‘신바람 야구’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스타성 강한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를 즐기고 경기를 지배했다. 이런 선수들에게 팬들은 열광했다. 당연히 팬들이 타구단보다 많았고 관중 동원도 단골 1위였다. 관중 500만 시대의 일등공신이 바로 LG였다.
대개 이런 팀 선수들은 강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팀 선수들과 비교해도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질책보다는 칭찬이 잘 들어먹힌다. 아울러 주위의 간섭보다는 조용한 방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선수들이 희생을 강조하는 감독을 만났다.
2003년 말 이순철 감독 부임 당시 구단은 신바람 야구가 퇴조하면서 각종 폐단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래서 개인보다는 팀의 야구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이 감독도 취임일성으로 “LG가 이겨야 프로야구의 중흥을 이룰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팀을 위해) 희생하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행하게도 이순철 감독과 선수들은 섞이지 못했다. 성격이 다른 부류가 만나게 되면 원활한 의사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 감독은 언론을 이용,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겼다. 서서히 미세한 틈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마찰음이 났다. 이 감독의 '희생의 야구'가 접목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올해까지 3년 내내 LG 야구는 찬스에서 숨죽이는 방망이, 돌림병 같은 잦은 부상, 붕괴되는 마운드 등 하위팀들이 갖고 있는 병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경기에서도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가 드물었고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도 보여주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패배주의만 물들어갔고 이 감독 홀로 야구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야심차게 맞이한 3년째에도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LG 중흥의 기치를 내걸고 '희생'을 요구한 이순철 감독은 도중하차했다. 이젠 LG 구단이 수 년째 풀리지 않는 숙제를 떠안았다. 지금 LG는'Team First 2006!'라는 캐치프레이즈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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