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에도 좋은 것이 많다”. 록의 대부 신중현이 7월 4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 공개홀에서 1TV ‘콘서트 7080’ 녹화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를 통해 한국 음악의 미래를 후배들에게 부탁했다. 신중현은 “록을 하던 젊은 친구들도 확고한 음악성이 없다보니 조금하다 그만두고 만다”며 “외국음악에 치우치지 말고 확고한 음악성이 찾아 우리 음악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신중현은 인터뷰에 앞서 “오랜만에 TV에 출연하게 돼 어색하다”는 말부터 먼저 꺼냈다. 80년대 ‘신중현과 뮤직 파워’로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TV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일이 어렵진 않았다. 그러다가 댄스 위주의 음악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댄스 음악과 교류할 수 없었던 신중현은 자연스럽게 브라운관에서 물러났다. 오랫동안 브라운관에서 벗어나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콘서트 7080’ 출연은 그와 팬들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무대가 될 것이다. 게다가 TV출연은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신중현. ‘한국 록 음악의 대부’ ‘한국적 록의 완성’ ‘한국 록 음악의 살아 있는 신화’ 등의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신중현이란 이름 석자를 빼놓고 한국 록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는 17세 때 서울 용산 미8군 무대 기타리스트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 1963년 한국 최초 로큰롤 밴드 ‘애드 포’를 결성했으며 1964년에 발표한 ‘빗속의 여인’을 비롯해 ‘커피 한 잔’ ‘떠나야 할 그 사람’ ‘님아’ ‘봄비’ ‘꽃잎’ ‘님은 먼 곳에’ ‘미인’ 등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그가 록의 전설로 추앙받는 까닭은 록이 표상하는 자유의 가치를 몸소 보여준 장본인이기 때문. 그러나 그의 노래는 70년대 군사정권에 의해 ‘퇴폐적이다’는 판정을 받았고 이런 이유로 많은 명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80년대 이후로는 인터뷰를 통해서만 간혹 모습을 비췄다. 이에 대해 신중현은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출연할 수가 없었다”고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인터뷰뿐이라고 해도 나이가 드니까 음악을 위해서라면 그런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대중음악이 체계를 갖추는 데 기여하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내 역할도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울러 신중현은 우리 음악이 한 가지 경향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도 경계했다. “우리는 록이면 록, 재즈면 재즈 등 다양한 음악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건 한 가지다. 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음악이 빈곤해지고 초라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한국의 일률적인 음악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날 ‘콘서트 7080’에서 신중현은 공연 외에도 록 음악을 하면서 겪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공개했다. 신중현은 “지금껏 음악을 하면서 단 한번도 회의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음악을 좋아했고 우리 음악이 세계 수준의 음악에 못 미치는 게 싫어 열심히 했다”고 말해 방청객의 눈길을 끌었다. 또 김종서 한영애 The solist 김목경 린 등의 후배 가수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흥을 돋우기도 했다. ‘신중현 스페셜’로 마련된 ‘콘서트 7080’은 29일 오후 11시 50분 방송된다. orialdo@osen.co.kr KBS 1TV '콘서트 7080' 출연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는 신중현./박영태 기자 ds3fan@0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