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안더레흐트에서 영입할 때 기대했던 강력한 임팩트는 보이지 못했다". '스나이퍼' 설기현(27)이 꿈에 그리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지만 울버햄튼의 제즈 모세이 단장은 떠나는 설기현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물론 "설기현은 인간적으로나 선수로서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종합해보면 기대가 컸던 만큼 떠날 때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분명 모세이 단장의 말은 되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세계 축구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로 몰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설기현이 그 '격전장'에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기현은 이미 지난해 1월 잉글랜드 FA(축구협회)컵 32강전에서 아스날을 만나 프리미어리그를 간접 경험했다. 당시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나선 설기현은 수세에 몰린 탓에 팀 동료들의 후방 지원을 받지 못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모세이 단장의 말대로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일각에서 볼을 끌고 공격 흐름을 지체한다는 평도 복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숨가쁘게 양쪽 그라운드를 오가는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속도에 부합하도록 업그레이드돼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지불한 이상 레딩의 스티브 코펠 감독은 설기현에 기회를 많이 줄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기대했던 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기용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숨막히는 전쟁터인 프리미어리그는 챔피언리그에 비해 경기수가 적은 데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벤치로 돌릴 여지가 다분하다. 레딩은 창단 135년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는 팀으로 1부리그 생존을 지상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주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좌우 미드필더와 윙 포워드, 최전방 공격까지 맡을 수 있는 설기현은 케빈 도일(22)과 데이브 킷슨(26) 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들은 지난 시즌 설기현이 뛴 챔피언리그에서 18골씩 몰아넣은 선수들. 또한 스티브 시드웰(23)과 미국 대표인 바비 컨베이(23)와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젊은 피'들과 당당히 맞서 주전 자리를 따내야 하는 셈이다. 강점은 분명 있다. 레딩 선수들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이 가장 큰 무기다. 한일 월드컵 때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직접 넣었고 독일 월드컵서는 프랑스전 동점골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모세이 단장도 말했듯 벨기에 최고 명문 안더레흐트에서 뛰었으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도 밟았다. 27살의 나이로는 큰 무대서 많이 뛴 것이라 여기서 비롯되는 유무형의 힘을 그라운드 안팎에서 발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여기에 프리미어리그와 차이는 있지만 레딩은 지난 시즌 챔피언리그에서 6경기를 남겨두고 승격을 확정지었고 최종 성적에서도 2위와 승점 10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2부리그서는 단연 발군의 실력을 갖췄던 팀이다. 출중한 선수들의 지원을 받아 만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설기현을 원한 레딩은 그의 장점을 보고 영입이라는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설기현에겐 이제 레딩의 '희망사항'을 캐치하고 풀어줘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박지성(25.맨유)과 이영표(29.토튼햄)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듯 설기현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는 9일 출국과 함께 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iam905@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