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편성을 둘러싼 SBS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 상업방송의 폐해로 여겨지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분위기이다. 시청자와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시청률 만이 드라마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최근 SBS는 월화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윤영미 극본, 장태유 연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당초 16부작으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2006 독일 월드컵 기간을 맞아 드라마 편성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지던 과정에서 한 회가 결방됐다. 월화드라마는 주 2회 방송되는 특성상, 짝수회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한 회가 결방되다 보니 2회 연속편성이라는 편법을 쓰지 않는 한 15회 내지는 17회로 막을 내리게 됐다. 여기서 SBS는 15회를 선택했다. 이 결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약속한 16부작에서 한 회가 빠지는 것은 명백한 조기종영에 해당된다고 ‘101번째 프러포즈’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그리고 15부 종영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저조한 시청률’이 있다고 꼬집고 있다. 시청률 때문에 프로그램이 죽고 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24시간 특별생방송 ‘희망TV 24’를 통해 7억 5000만 원이나 되는 희귀질환 어린이 돕기 성금을 모금하고, SBS 돈 10억 원을 성금에 쾌척하며 기껏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해 온 SBS가 택할 방향은 아니다. 문제는 드라마 제작의 총책을 맡은 인사들의 마인드이다. 최근 드라마 제작의 책임을 맡은 고위 인사는 7월 6일 보도된 인터넷 매체 와의 인터뷰에서 “조기 종영이 아니라 15회로 자연스럽게 끝나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대본이 16부까지 나와 있는 상황도 아니고, 처음부터 16부라고 못박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편성이 다 이런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책임자들의 마인드가 이 정도라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지난 5월 23일 열린 ‘101번째 프러포즈’ 제작발표회에서 SBS가 만든 홍보자료에는 명백하게 ‘70분물, 16부작’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또 대부분의 매체들은 ‘16부작 월화미니시리즈’라는 수식어를 명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16부작 이라고 못박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현실 인식이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01번째 프러포즈’는 어떻게 보면 SBS가 저지른 편성 횡포의 희생양이다. 애초 ‘101번째 프러포즈’는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 후속으로 4월 중순께 방송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청률 높은 ‘하늘이시여’가 4차례나 연장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궁여지책으로 잡은 자리가 월화드라마였고, 월드컵 기간과 정확하게 맞물리는 시기였다. ‘하늘이시여’가 처음에 계획했던 50부작에서 85부작으로 늘어난 것도 논란이 많았다. 시청률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고무줄 편성이라는 비난을 크게 들었던 의사결정이었다. 이 뿐만 아니다. 지난 주 종영된 ‘스마일 어게인’은 방영 중간에 작가를 교체하는 악수를 두기도 했다. 물론 제작진끼리 호흡이 맞지 않으면 중간에 바뀔 수도 있고 보충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언론을 통해 작가 교체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철저히 함구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만약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시청자들은 드라마 중간에 달라진 색깔을 놓고 고개만 갸웃거릴 뻔 했다. 누가 극본을 맡고 누가 연출을 담당하는가 하는 것도 시청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정보이자 약속이다. 모든 공식 자료에는 A라는 작가가 집필한다고 버젓이 기록해 놓고 실상은 B라는 작가가 집필했다면 전 시청자를 놓고 사기행각을 벌인 것과 다름 없다. 후발 주자인 SBS는 최근 경쟁사들을 앞지르는 여러 가지 징후들로 잔뜩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되살아나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망령은 그래서 경계하고 싶다. 100c@osen.co.kr 조기종영 논란을 겪고 있는 ‘101번째 프러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