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와 프로구단은 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팬들을 우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는 FA컵에서 터져나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지난 12일 2006 하나은행 FA컵 FC 서울-포항 스틸러스의 16강전이 열릴 예정이던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을 불과 1시간 여 앞두고 돌연 '경기가 연기됐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팬들은 경기장 밖 매표소에서 입장만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빗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포터스 400여 명과 일반 팬들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침묵했다. 30~40명은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FC 서울의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통해 뒤늦게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5만 회원들 중 다수도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등 공을 쳤을 것이다. K리그와 국제 룰은 보통 3시간 전에 경기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팬들에게 미리미리 알려줘야 이날 같은 '고통'을 주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규정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팬들의 헛걸음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협회와 FC 서울은 이를 망각했다. ▲이들에게 팬들은 무슨 존재인가 폭우가 쏟아져 일부에서는 수재도 나고 대중 교통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맞아 얼마오지 않은 팬들에게 이들 '경기 주체들'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되고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이번 사태는 흡사 팬들의 기반으로 하는 주체가 '팬들을 저리 가라'며 등떠미는 꼴이었다. 가뜩이나 월드컵과 유럽파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눈이 높아져 있는 팬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실정인데 경솔하고 안이한 결과를 빚은 것이다. '구멍가게'는 지역 주민들을 최우선의 존립 기반으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형 마트'에 손님을 빼앗기고 파리만 날리게 된다. 그렇다면 합당한 사과로 팬들을 이해시켰는가? 물론 아니다. 이날 구단 관계자가 몇몇만이 경기 연기를 뒤늦게 알리고는 얼마 뒤 구단 사무실로 돌아간 게 전부다. 애꿎은 매표소 직원과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만 팬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았다. FC 서울 고위 관계자와 경기 감독관의 '굼뜬' 결정에 경기를 열심히 준비한 하위 직원들만 욕을 먹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고위 관계자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팬들이 빗속에서 추위에 떨 때 말이다. 하루가 지났지만 13일 오전 현재 사과문은 없고 홈페이지에는 12일자로 'FA컵 경기 우천으로 연기'라는 제목의 공지사항만 게시판에 올려져 있다. '당초 열릴 예정이던 FA컵 16강전이 우천으로 인해 연기되었습니다. 추후 일정은 확정대는 대로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입장권을 예매하신 분은 일괄 환불처리 하오니 이점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인터넷을 통한 본인 환불시 수수료가 있습니다)'. 끝. ▲"도대체 한국축구는 '룰'이 없다" 이날 이 사태를 두고 한 축구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도대체 한국축구는 '룰'이 없다". "피파 랭킹 56위가 한국축구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프로축구연맹과 달리 대한축구협회 규정에는 경기 시작 전 몇 시간 전에 경기 진행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지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고 이번 FA컵은 누가 주체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날도 K리그와 국제 룰을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구단들은 FA컵을 시작하면서 경기 주최권을 나눠가졌다. 물론 구두로 이뤄졌다. 협회는 경기장 내 A보드 광고권을 가졌고 구단은 실질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몫을 챙겼다. 이런 이유로 FC 서울은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며 '경기 연기'를 고집했고 늦게 경기장에 도착한 경기 감독관은 경기를 하자는 포항과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경기를 치르지 않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경기 예정 시간 몇 시간 전까지도 협회 측은 경기를 치를 생각이었지만 알고 보니 해당 구단과는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누가 상위 기관이고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지 알 수가 없다. 홈팀 FC 서울은 이날 경기를 준비하면서 수천 만 원을 썼고 원정팀 포항도 천여 만 원을 경비로 사용했다. '우리도 만만찮은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은 원칙없는 행정으로 볼 뿐이고 이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iam905@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