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광주 원정 경기. LG 좌완 에이스 이승호(30)에게는 잊을 수 없는 등판이었다.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다 허리가 삐끗하며 통증이 생겼다. 하지만 5회 3실점한 뒤에야 코칭스태프에게 통증이 있음을 뒤늦게 보고했다. 코칭스태프는 급하게 구원투수진을 가동했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에 양승호 감독대행은 팀을 생각하지 않는 이승호의 행동에 화가 났고 곧바로 2군행 보따리를 싸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이전 2군으로 갈 때처럼 경기 후 구단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경기 도중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해야 했다. 양 대행은 “2군 내려가는 선수가 무슨 1군하고 함께 이동하느냐. 고속버스를 타라”고 일침했다. 그렇게 쓸쓸하게 2군행에 오른 이승호는 통증 치료와 함께 구위 컨디션을 가다듬는 데 전념했다. 이승호로선 한 열흘 정도 쉬면서 통증이 없어지면 1군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그가 LG 선발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7월 25일 후반기가 시작되고도 1군에서는 호출이 없었다. 일 주일이 흘러도 연락이 없었다. 양승호 대행의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이다. 양 대행은 코칭스태프와 구단 프런트를 통해 “이승호 없이도 야구할 수 있다고 전해라. 다른 신예 투수들 키우는 데 열중하겠다”면서 이승호에게 말이 흘러가도록 유도했다. 결국 ‘뜨거운 태양’아래서 2군생활에 지친 이승호는 은밀히 잠실구장의 감독실을 찾았다. 이승호는 양 대행에게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며 사과했고 이에 양 대행은 “그럼 보직에 상관없이 뛰겠느냐. 패전처리로 나갈 수도 있다”며 각오를 물었다. 그러자 이승호는 “어떤 보직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며 재차 각오를 다졌다. 그때가 8월 10일이었다. 이승호의 사과에 마음이 풀린 양 대행은 다음날 이승호를 1군 엔트리에 넣고 한화전 선발로 등판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패전처리로 기용하며 구위를 점검하던 좌완 신예 신재웅에게 11일 아니면 선발로 뛸 기회 제공이 힘들 것으로 여기고 이승호 대신 신재웅을 선발로 마운드에 올렸다. 신재웅은 기다렸다는 듯 한화 타선을 상대로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1피안타 완봉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 달만에 1군에 복귀한 이승호는 덕아웃에서 자신 대신 선발로 올라간 신재웅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승호는 양 대행이 공언한 대로 다음날(12일) 3-4로 뒤진 가운데 패전으로 9회초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복귀 신고식을 가졌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던 것일까. 9회 패전으로 올라갔는데 9회말 공격서 최길성이 끝내기 투런 홈런을 날리는 덕분에 졸지에 승리투수로 1승을 챙기는 기쁨을 누렸다. 패전 처리임에도 불만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자 양 대행도 뿌듯했다. 양 대행은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다음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발로는 당분간 내보낼 수 없지만 10승은 채워주도록 배려하겠다”며 이승호 밀어주기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그 다음 경기부터 이승호는 선발진이 무너지거나 팽팽한 경기 중반에 투입돼 승리 투수가 될 조건을 채우는 경기 등판이 계속되고 있다. 패전처리 대신 ‘셋업맨’ 중간투수로서 승수 쌓기에 유리한 시점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한화전서 1⅓이닝 1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고 15일 롯데전에도 구원 등판, 3⅔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리고 17일 롯데전에서는 선발 신재웅에 이어 구원 등판, 2이닝 4실점을 하고도 팀 타선의 폭발로 승리투수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감독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고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지난 11일 복귀 후 4경기 등판서 2승 1홀드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시즌 8승 7패, 방어율 4.26을 마크하고 있어 시즌 10승에 2승을 남겨놓고 있다.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을 옮긴 이승호가 양 대행의 밀어주기에 힘입어 시즌 10승 고지를 밟을 수 있을지 흥미롭다. 1999년 입단해 프로 8년차인 이승호는 2003년에만 11승 11패로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을 뿐이다. 올해 양 대행의 후원을 발판삼아 10승을 달성하면 생애 2번째 두 자릿수 승리 달성인 것이다. sun@osen.co.kr 이승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