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황에서 번트가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배 감독님의 작전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 나나 상대나 모두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송진우).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투수로 사상 최초의 개인 통산 200승에 도전하고 있는 '회장님' 송진우(40.한화)는 지난 22일 현대전에 선발 등판, 4번째 200승 사냥에 나섰으나 무산됐다.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고 2-0으로 앞선 가운데 맞은 6회초에서 선두타자 서한규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다음타자 송지만에게 중월 2루타를 맞아 무사 2, 3루의 위기에 몰렸다. 여기서 상대 벤치의 김재박 감독은 후속 타자 유한준에게 볼카운트 1-0에서 2구째 기습 스퀴즈번트를 지시, 3루주자 서한규를 불러들였다. 한 점을 쫓아간 현대는 곧바로 이택근의 빗맞은 우전안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7회 송지만의 역전 스리런 홈런이 터져 송진우의 200승을 저지했다. 송진우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대의 스퀴즈 번트에 대해 예상을 했냐'는 물음에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말을 아꼈다. 김재박 감독이 '번트 공격의 달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 상황에서 번트가 나올 것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송진우는 번트 공격을 시도한 상대 벤치에 대해 섭섭함을 밝힐 수도 있으나 '선배 감독에 대한 예의'와 '야구는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답으로 아쉬움을 뒤로 했다. 김재박 감독의 작전에 투수들 중 '수비의 귀재'로 불리는 데다 다년간 여러 가지 상황을 다 겪어본 송진우조차 예상을 못해 허를 찔린 것이다. 이처럼 예상을 깨는 김재박 감독의 야구는 현대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날 경기 전 만난 현대 주장 이숭용(35)은 김재박 감독의 야구를 '직감의 야구'로 평했다. 좌타자인 이숭용은 김 감독과 10년을 넘게 한 팀에서 뛰고 있지만 "아직도 상대가 좌완 선발을 내세울 때 나의 선발 출장 여부를 모르겠다. 감독님이 경기 직전 스타팅 라인업을 짤 때 결정된다"며 김 감독의 직감에 대해 설명했다. 이숭용은 "오늘은 좌투수 선발이라 안나가겠지하고 있으면 스타팅 라인업에 끼는 일이 많고 이번 만큼은 나가서 보여줘야지 하는 날이면 선발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예측 불허"라면서 "우리 감독님 야구는 '직감의 야구'다. 경기 중 작전도 데이터보다는 직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숭용은 "그래도 승률이 높은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경기 전 이숭용의 '김 감독 야구는 직감의 야구'라는 평가가 실전에 들어간 6회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그리고 성공을 거둬 송진우의 200승 제물 직전에서 탈출하며 승리를 따내는 결실을 맺었다. 현역 시절부터 김 감독이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것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준 한 증거였다. 현대에서만 11년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김재박 감독이 '직감의 야구'로 올 시즌도 선전하고 있다. 과연 김 감독이 '직감의 야구'로 한국시리즈 5회 우승과 시즌 종료 후 치를 아시안게임(11월말, 카타르 도하) 금메달을 따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sun@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