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정치’에 살고 ‘멜로’에 죽고
OSEN 기자
발행 2006.08.29 10: 44

SBS TV 주말 대하사극 ‘연개소문’(이환경 극본, 이종환 연출)이 이환경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조금씩 살려내고 있다. 1997년 ‘용의 눈물’, 2000년 ‘태조 왕건’에서 보여줬던 정치색 짙은 남성 드라마의 분위기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반쪽 짜리다.
‘연개소문’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은 ‘연개소문’의 스토리를 놓고 두 갈래의 드라마로 인식하고 있다. 하나는 수나라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암투’이고 나머지 하나는 신라 김유신 일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랑 놀음’이다.
시청자들의 반향이 조금씩 일고 있는 분야는 바로 수나라 황실을 둘러싼 이야기다. 수나라 황실에는 수문제 김성겸과 독고황후(정동숙 분), 그리고 양광 김갑수를 중심으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암투가 시작되고 있다. 양광은 비록 수문제의 차남이지만 정치적 야심이 커 장남을 몰아내고 정권을 쟁취할 계략을 꾸미고 있다.
왕실과 절대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이환경 작가가 가장 강점을 보이는 분야이다. ‘용의 눈물’ 같은 대하사극이 남성 시청자까지 사로잡았던 배경에는 이환경 특유의 정치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다. 수문제의 총애를 받은 위지녀를 시기해 단칼에 목을 베어버린 독고황후의 전횡에 수나라 황실이 혼란에 빠지자 양광은 그 틈을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키워 나간다.
수문제와 독고황후를 화해시키는 과정에서 양광의 역할은 빛이 나고 양광의 계략에 빠져든 양광의 형은 오히려 사리분별을 못하는 인물로 수문제와 독고황후로부터 낙인 찍히게 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부모도 형제도 얼마든지 속이고 이용할 수 있다는, 이환경 작가의 입맛에 딱 맞는 상황이 갖춰졌다. 여기에 연극배우 정동숙과 김갑수의 노련한 연기가 빛을 내기 시작했고 한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코믹한 인물로 그려졌던 수문제 김성겸도 점차 상황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김유신 일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멜로 라인이다. 그 동안 이환경 작가의 작품에서 멜로는 좀처럼 찾아 보기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이 작가의 가장 취약한 분야라고 할 수도 있다.
‘연개소문’에서의 멜로는 처음부터 이환경 작가가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다. “멜로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털어 놓던 이 작가이다. 아니나다를까 ‘연개소문’에서의 멜로 라인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멜로적 효과라는 것은 시청자와 연기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 ‘연개소문’에서의 멜로는 전혀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탓에 침체에 빠진 ‘연개소문’을 구출하라는 특명을 받고 투입된 젊은 연기자들도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까지 일고 있다.
‘연개소문’에서 멜로적 요소가 기를 못 펴는 데는 같은 고구려사를 다루고 있는 ‘주몽’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도 있다. 퓨전사극을 표방한 ‘주몽’이 감칠맛 나는 멜로적 요소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감안해 ‘연개소문’에도 멜로가 상당부분 투입됐는데 그것이 꼭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연개소문’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정치적 요소와 멜로적 요소가 잘 조화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경쟁작품을 의식해서라든지, 구색을 맞추기 위한 멜로라면 굳이 같이 갈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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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황실에서 권력암투의 중심에 선 양광 역의 김갑수(오른쪽).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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