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선동렬(43) 삼성 감독이 현역서 은퇴하고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의 일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야구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국보급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동렬의 업적을 기려 ‘선동렬상’을 만들자는 일부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 논의는 선동렬 감독이 2004년 삼성 코치로 부임하면서 흐지부지됐지만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이름을 붙이는 상’을 만들자는 게 공론화된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 후 3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회장님’ 송진우(40.한화)가 한국 야구사상 최초로 ‘200승’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한국의 사이영상’은 과연 누구 이름을 따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게 됐다. 선동렬과 송진우 모두 한국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투수들이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둘 중 누구의 이름이 '한국의 사이영상'에 들어갈 것인지는 치열한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름이 붙는 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프로야구를 시작한 미국과 일본의 예에서 보듯 이들이 현역을 그만두고 한참 지난 후에 후세대가 평가할 과업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최고의 영광인 사이영상은 역대 최다승(511승) 투수인 사이영이 숨진 다음 해인 1956년에 제정됐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 선발투수에게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도 사와무라가 2차대전 중 사망한 후인 1945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사후에 상을 제정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적어도 은퇴 후 30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는 후세의 평가에 따른 상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동렬 감독이나 송진우 모두 그때는 70대에 접어든 나이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는 상의 주인공이 될 만하다. 둘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특장을 소개해본다. ▲선동렬, ‘강력한 스터프’를 앞세운 ‘전설의 방어율’ 우완 정통파로 150km대의 강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를 자랑하던 선동렬은 ‘불멸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진기록이 하나 있다. 프로 데뷔 2년차였던 1986년 해태에서 선발투수로 뛰며 작성한 ‘0점대 방어율’이다. 선동렬은 당시 39경기에 등판해 262⅓이닝을 던져 0.99라는 엄청난 방어율을 수립했다. 현재까지 한국야구 선발투수 최고 기록이다. 또 그 해 24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선동렬이 1995년까지 한국야구에서 11년간 활동하는 동안의 개인 최다승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야구 시절 ‘천하무적’으로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동렬은 현재도 통산 방어율(1.20)과 최다 완봉승(29회) 부문서 당당 1위를 지키고 있다. 통산 최다승과 탈삼진 부문선 각각 146승, 1698개로 송진우(200승, 1847개), 이강철(152승, 1749개)에 이어 3위를 마크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일한 투수부문 ‘트리플 크라운(다승 방어율 탈삼진)’ 4회 달성을 비롯해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방어율 1위 7연패 및 방어율 1위 8회 등극,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다승왕 3연패 등 최다승 4번으로 한국야구사에 가장 강력한 투수로 남아있다. 1993년과 1995년에는 최우수 구원투수상을 수상했고 시즌 최고투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도 6회 수상했다. 선동렬이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진출하지 않고 그대로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송진우보다 먼저 통산 200승 고지를 밟았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물론 선수시절 말미에는 주로 구원투수로 활동했지만 지금도 140km대의 공을 던지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역 생활을 더 오랫동안 했을 것이다. ▲송진우, 칼날 제구력과 자기 관리를 통한 ‘꾸준함의 대명사’ 지난 29일 광주 KIA전에서 5수 끝에 개인통산 200승의 위업을 달성한 송진우는 ‘꾸준함의 대명사’로 통하는 최고 좌완 투수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타고난 유연성을 앞세워 프로 데뷔인 1989년부터 현재까지 18시즌 동안 특급 투수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올해 40세로 최고령 현역 투수인 그는 구속은 전성기 때 140km대 중반에서 130km대 후반으로 떨어졌지만 자로 잰 듯한 면도날 컨트롤과 다양한 구질, 그리고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마운드 운영 능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물적 수비력으로 20년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과 겨뤄도 뒤지지 않고 있다. 프로 데뷔 때나 지금이나 체격 조건과 투구폼에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송진우는 한 시즌 성적과 수상 내역만을 놓고 선동렬의 현역 시절과 비교하면 앞서는 것이 없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마운드를 꿋꿋하게 지켜오면서 쌓은 업적은 선동렬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통산 최다승 부문은 물론이고 탈삼진 부문도 1위를 질주하고 있다. 18시즌을 뛰는 동안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해가 11번이나 되는 등 부상없이 매년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특급 투수로 활동해오고 있다. 개인 한 시즌 최다승은 1992년 기록한 19승이다. 한국야구 전인미답의 고지인 200승에 최초로 등극했고 각종 최고령 투수 기록들을 경신해나가고 있다. 지난해 9월 8일 문학 SK전서는 한국야구 최고령 완봉 및 완투승을 기록했다. 수상 내역을 보면 1992년 다승왕, 2000년 승률왕, 1990년과 1992년 구원 1위와 세이브 1위, 그리고 2002년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그리고 송진우에게는 선동렬에게는 없는 훈장(?)이 하나 있다. 송진우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탄생을 주도하고 선수협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선수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회장님’이라는 기분좋은 별명이 붙어다니고 있다. 이처럼 한국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동렬과 송진우 중 누가 자신의 이름이 붙는 상을 후배들에게 남겨줄지 궁금하다. 몇십 년 후 후세들이 평가해야 할 사안이지만 현재를 사는 야구팬들에게도 큰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다. sun@osen.co.kr
최고투수상, 선동렬상-송진우상 '어느 쪽?'
OSEN
기자
발행 2006.08.30 11: 30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