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가 한국 시장에서 뚜렷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재난 블록버스터 '일본침몰'이 9월 첫주 박스오피스에서 '괴물'을 누르고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인 한국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개봉 때마다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지만 실사영화들은 국민적 정서가 다른 관계로 한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못했다. 일본영화 개방 초창기 ‘러브레터’(1995년 국내 개봉)로 흥행 가능성을 열었던 이와이 슌지 감독조차도 2003년 ‘하나와 앨리스’를 들고와서는 쓴 잔을 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등 영화적 감수성이 뛰어나고 다양한 소재를 다룬 수작들이 잇달아 들어오면서 인디극장과 일본영화 전용상영관 등을 중심으로 점차 국내 관객 호응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공포물에서 강세였던 J 호러가 여름 한철마다 꾸준히 수입되는 가운데 장르별로 스타 배우들이 뜨고 있다. 대표적인 배우가 오다기리 조와 사와리지 에리카, 그리고 초난강으로 더 유명한 구사나기 쓰요시 등이다. 여성처럼 섬세한 미모를 자랑하는 오다기리 조는 ‘박치기’ ‘메종 드 히미코’에 이어 올 가을 ‘유레루’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불과 6개 스크린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개봉 5일째 1만명을 돌파했고, 상영관이 3개로 준 상황에서 지난달 말까지 3만5000명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기존의 ‘메종 드 히미코’가 갖고 있던 16일째 3만명 기록을 깬 것이다. ‘박치기’에서 아리따운 조총련계 여고생을 연기했던 사와지리 에리카는 올 여름 공포영화 ‘유실물’로 한국을 다시 찾았고, 일본 최고 인기 가수이자 배우인 구사나기 쓰요시는 코미디 ‘천하장사 마돈나’에 특별출연하는 등 한국내 고정팬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이번 '일본침몰'의 주인공이다. 이같이 밑밥을 충분히 뿌린 상태에서 ‘일본침몰’이 대박 예고를 냈다. 지난달 31일 개봉 첫날 전국 7만8000명 관객으로 애니메이션을 뺀 일본영화의 평일 개봉으로는 ‘러브레터’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고현정 김승우 주연의 ‘해변의 여인’과 ‘천하장사 마돈나’ 등 경쟁력 갖춘 한국영화들과 같은 날 개봉해서 1위로 나서더니 드디어 첫 주말 스코어에서 ‘괴물’까지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7월15일 일본에서 먼저 선을 보인 이 영화는 벌써 500억여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에 비해 ‘한류’를 앞세워 일본시장을 두들겼던 한국영화들은 올해들어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해 상반기 3100만 달러어치의 영화를 일본에 수출했으나 올 상반기는 870만 달러로 그 규모가 크게 줄었다. 작품수도 줄고, 편당 가격수도 헐값으로 떨어졌다. 한류 스타 출연의 한국영화들을 입도선매 식으로 거액을 주고 사간 일본 배급업자들이 재미를 보기는 커녕 대부분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강동원의 ‘형사’, 권상우의 ‘야수’, 정우성 이정재의 ‘태풍’, 최지우의 ‘연리지’ 등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 실사영화 국내 개봉사상 최대규모인 200여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일본침몰’이 박스오피스 1위까지 집어삼키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물론 ‘일본침몰’의 흥행은 단기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도 적지않다. 일본이 대지진으로 바다에 가라앉는다는 비극적 소재가 역설적으로 한국 관객의 만족감을 충족시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9월중순부터는 추석 대목을 겨냥한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연달아 개봉할 예정이어서 ‘일본침몰’의 한국공략은 짧게 끝날 것이란 지적이다. 어찌됐건, 지난 1년 사이에 한국과 일본의 영화시장 판도는 한국의 절대적 우세에서 점차 대등한 관계로 흘러가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mcgwire@osen.co.kr ‘일본침몰’(올댓시네마 제공)과 ‘괴물’(청어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