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홍상수 감독도 내심 흥행 기대를 했을 것이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후로 이제 7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이다. 스크린에 데뷔하는 톱스타 고현정을 비롯해 김승우, 송선미, 김태우 등 출연진도 나름대로 구색을 갖췄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극장전’ 등 제목부터 왠지 무겁고 범상찮아 보였던 전작들과 달리 ‘해변의 여인’은 이름부터 통속적이다. 그 결과는? 8월31일 개봉한 ‘해변의 여인’은 지난 주말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14위로 뚝 떨어졌다. 개봉 첫 주말 5위로 가능성을 보이는듯 하더니 한 주 만에 날개없이 추락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10일까지 동원 관객수는 15만명. 전국 극장들의 스크린 가입률이 86%인 현실을 감안할 때 실제 관객은 18만명 가량이 들었다. 이같은 추세라면 이번 주말 김기덕 감독이 간절히 바라던 20만 관객을 돌파한다. 그러나 김기덕과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계에서 자기 색깔의 작가적 작품을 내놓고 있는 홍상수 감독의 한계도 여기까지다. 스타를 캐스팅하고, 관객 입맛에 맞도록 화학조미료 약간 넣은 스토리 전개를 선보였지만 흥행 수위는 20만명이 힘겹다. 벌써 다음 주부터 극장가는 추석을 겨냥한 국내 메이저 배급사들의 흥행 기대작들로 메워지기 때문에 ‘해변의 여인’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해변의 여인’보다 한 주 앞서 8월24일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시간’은 박스오피스 20위로 8~10일 1600여명이 이 영화를 지켜봤다. 5~6개 상영관으로 3만여명을 동원해 최근 몇 년동안 김 감독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중이지만 상업영화 흥행작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도 홍상수와 김기덕, 두 감독은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상당한 고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어 계속적인 연출이 가능하고 이 정도 흥행 수치를 올릴수 있었다. 한 두편 주목할만한 작품을 냈거나 데뷔를 앞둔 작가주의 지향 감독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더 냉혹하고 비참하다. 영화의 수준과 관객 동원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감독의 예술관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작품은 평단의 호평을 받을지라도 일반 대중에게는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흥행을 원하면 상업영화를 찍고, 작가주의에 충실하고 싶다면 관객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는 한국 관객의 메시지가 요즘 박스오피스 흥행 성적에 담겨져 있다. mcgwire@osen.co.kr 홍상수 감독(왼쪽)과 고현정, 영화사 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