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로스앤젤레스, 김형태 특파원] 6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33.시애틀 매리너스)를 두고 시애틀 매리너스가 딜레마에 빠졌다. 이치로가 줄기차게 때려내는 단타에도 불구하고 팀 공격력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가 확정된 시애틀의 가장 큰 요인은 공격력 약화다. 시애틀은 올 시즌 팀득점 11위, 홈런과 장타율 각각 10위에 그쳤다. 좀처럼 점수가 나지 않다 보니 승리 기회도 그만큼 적어진다. '득점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격언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야구계의 일각의 시선은 이치로에게 향한다. 이치로가 만들어내는 단타가 과연 팀 타선에 얼마 만큼 도움이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치로의 원래 포지션은 우익수. 30홈런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파워히터가 보통 차지하는 포지션이다. 그러나 이치로는 홈런과는 거리가 멀다. 타율 3할2푼1리에도 불구하고 9홈런과 장타율 4할1푼1리를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전형적인 교타자다. 장타자가 차지해야 할 포지션을 이치로가 맡다 보니 타선의 부조화가 심각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시애틀은 사정 끝에 시즌 막판 이치로를 중견수로 전업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프 시즌 동안 코너 외야를 맡을 수 있는 파워히터 영입을 염두에 둔 조치다. 장타력을 겸비한 중견수보다는 우익수 또는 좌익수가 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치로는 시애틀의 이 같은 움직임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기색이다. 그는 1일(한국시간) '시애틀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견수를 보라면 보겠다. 팀이 원한다면 한다"면서도 "항상 지기만 하는 팀에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패배 의식이 깔려 있는 팀에선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치로는 일본 시절 정교함과 파워를 겸비한 타자였다. 20홈런을 2차례 기록했고 풀시즌을 치른 7년 동안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냈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주위에선 그가 마음만 먹으면 파워수치를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치로는 이런 은근한 기대심을 무참히 꺾어놨다. "두 가지를 다 잘하기는 어렵다. 200안타와 50홈런을 동시에 기록하면 좋겠지만 본업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며 파워히터로의 전향을 거부했다. 빌 바바시 시애틀 단장 역시 "최고의 1번 타자에게 홈런수를 늘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스타일에서 변화를 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올 시즌 시애틀에는 30홈런을 넘긴 타자가 라울 이바녜스와 리치 섹슨 둘뿐이다. 아드리안 벨트레가 23홈런으로 분전했지만 나머지 타자 중 20홈런 이상 기록한 선수는 전무하다. 마운드가 그다지 높지 않은 팀에서 이런 성적으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렵다. 그러나 바바시는 "이번 겨울 최우선 과제는 선발 마운드를 강화하는 것이고 파워히터 영입은 그 다음"이라며 청사진의 일단을 공개했다. 일각에선 시애틀과 계약기간 1년이 남은 이치로가 타팀 이적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만큼 이치로가 구단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는 방증이다. "구단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다. 그런데도 팀이 왜 이 모양이냐"는 이치로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시애틀의 다음 시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단타보다 장타가 승리에는 더 기여한다'는 얘기는 야구에서 정설이다. "홈런과 타점 많은 선수가 MVP를 받아야 한다"는 데이빗 오르티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적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빅리그 최고의 교타자인 이치로의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