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서의 사극 열기가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월화극은 MBC ‘주몽’, 주말극은 SBS ‘연개소문’과 KBS 1TV ‘대조영’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수목극까지 장악할 태세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10월 11일부터 하지원 주연의 KBS 2TV ‘황진이’가 시작된다. 일주일 내내 사극 바람이 불게 생겼다. 이 가운데 '주몽’은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국민 드라마 소리까지 듣고 있다. 시청률 40%대라면 맞붙는 드라마들이 힘 한번 못쓰고 나가떨어지는 수치다. '주몽’ 때문에 귀가를 서두른다는 얘기도 들리고 드라마 방송시간에 길가의 대형TV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브라운관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행들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주몽’은 주몽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극을 전개해나가는 퓨전사극이다. 퓨전사극이 정통사극과는 달리 역사적 사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가 수월한 까닭에 사극 열풍 속에서도 퓨전사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곧 방영을 앞두고 있는 ‘황진이’ 역시 퓨전사극으로서 풍성한 볼거리와 선악의 팽팽한 대립이 선사하는 극적 쾌감이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최고조에 이르도록 한다. 반면 현대극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톱스타를 내세워 젊은이들의 감성에 어필하는 트렌디드라마는 최근 들어 그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현재 방영중인 ‘구름계단’ ‘독신천하’ 등의 트렌디드라마들이 한 자릿수의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고현정 주연의 ‘여우야 뭐하니’와 에릭 주연의 ‘무적의 낙하산요원’이 방영에 앞서 트렌디드라마의 옛 명성을 되찾아줄 거라 기대했으나 두 작품 모두 아직 시청률 20% 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우야 뭐하니’는 TV드라마로서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무적의 낙하산요원’은 에릭의 출연만으로 큰 관심을 모았으나 고현정의 등장에 주춤주춤 뒤로 밀려나고 있다. ‘주몽’과 마찬가지로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주말극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문난 칠공주’도 마냥 즐거울 수만 없다. ‘소문난 칠공주’는 왜곡된 가족관계와 출생의 비밀, 혼전임신 등 자극적인 극 전개에 시청자들의 뭇매를 줄곧 맞았다. 자극적인 소재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언제 등을 돌리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황진이’가 뚜껑을 열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황진이’의 가세로 사극 열풍은 더욱 그 기세를 강화하고 현대극의 무대는 지금보다 더욱 좁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극의 부진한 성적에 주 시청자 층인 10,20대들의 TV외면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드라마 자체의 경쟁력 상실에 가장 큰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급할수록 멀리 돌아가라고 자극적인 내용보다 작품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것이 바로 사극이 호평을 얻는 이유다. orialdo@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