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백 마디 웅변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때로는 이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작년 초 신년 특집으로 제작돼 SBS TV에서 방송된 ‘내사랑 토람이’(윤영미 극본, 한정환 연출)가 그 좋은 예다. 시각 장애인 전숙연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방영 직후 큰 파장을 일으키며 시각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자체를 바꿔 버렸다. 비슷한 맥락에서 올 추석엔 ‘깜근이 엄마’(노지설 극본, 윤류해 연출)가 화제다. ‘깜근이 엄마’는 어느덧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나라를 찾은 수많은 아시아 민족과 우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이야기를 차분한 시각으로 조명했다. 이 드라마가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외모’에 대한 편견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다르게 보는 편견을 경계했다. 이 같은 인식은 제도라는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편견과도 맥을 같이 했다. 고아나 사생아에 대한 냉소, 우리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시 같은 사회적 편견의 연장선에서 혼혈 문제를 쳐다봤다. 드라마는 야채 도매상을 하는 조상목(이원종 분)의 재혼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도순(견미리 분)은 상목의 성실하고 착한 심성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둘의 순탄한 결혼을 막는 장애가 있었다. 바로 상목의 전처에게서 태어난 명근(김지한 분)이라는 혼혈아였다. 사회적 편견에 무방비로 노출돼 성장한 명근은 이미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져 있었다. 도순과 명근은 좀처럼 엄마와 자식의 관계로 녹아 들지 못한다. 신혼의 단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목이 교통사고를 내 철창신세를 지게 되자 도순과 명근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게 된다. 여기서 도순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생아라는 출생의 아픔을 안고 있었던 도순은 새 엄마(정재순 분)의 차별과 냉대 속에 불행하게 성장했다고 믿고 있다. 도순에게는 배 다른 동생이 있었는데 그 동생은 마침 명근의 담임선생(남성진 분)이 되어 현실의 도순과 다시 연결된다. 도순과 명근의 극적인 화해는 선생을 통해 새 엄마와 도순의 오해가 풀어지면서 이뤄진다. 도순을 미워하게 된 계기가 도순이 새 엄마를 먼저 경계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편견이라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사회악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드라마가 방송되고 나자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의견을 남기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는 사연에서부터 우리 주변에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혼혈아들의 아픈 삶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자는 의견까지 드라마가 남긴 감동을 되새기고 있다. 더구나 명근 역을 맡은 김지한 군이 실제 혼혈아라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한층 더 관심을 끌고 있다. 김지한 군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까지 연기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보통 어린이였지만 실제 혼혈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놀라울 정도로 매끈한 연기를 해 냈다.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새 엄마 역을 충실히 수행해 눈물을 자아낸 견미리에 대한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SBS TV를 통해 10월 7일 오전에 방송된 ‘깜근이 엄마’의 1, 2부는 TNS미디어코리아 집계 결과 10.5%, 13.0%의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우리 시대 혼혈아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 이 드라마를 통해 혼혈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100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