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얘기도 안 했어. 선배나 투수코치가 조언해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까지 그러면 부담돼". 김인식 한화 감독은 지난 8일 KIA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직전과 직후 이렇게 똑같은 말을 했다. 내용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지만 대상은 달랐다. 경기 전에는 1차전 선발 문동환, 경기 후에는 2차전 선발로 내정된 류현진을 두고 한 말이었다. 김 감독의 '알아서 하도록 맡기기' 작전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돌입해서 한층 두드러졌다. 문동환의 올 시즌 KIA전 5승 무패 성적에 대해 "그런 것은 (초단기전 승부에서) 아무 의미 없어"라고 손사래치던 김 감독의 예상대로(?) 문동환은 1회초부터 장성호-이재주에게 랑데부 솔로 홈런을 맞으며 선제 2실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동환은 5⅔이닝 2실점이라는 퀄리티 스타트에 준하는 피칭으로 선발 임무를 완수했다. 3회 2사 만루와 4회 2사 2,3루 등 결정적 위기서도 '알아서 하도록 맡긴 것'이 최선의 결과를 빚어냈다. 문동환은 이날 6안타에 3사사구를 내줬으나 김 감독은 투구수 96개까지 마운드에 뒀다. 똑같이 5⅔이닝 2실점을 기록했으나 투구수 77구인 상태에서 강판된 KIA 선발 김진우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문동환을 6회 투아웃까지 참아줬기에 한화는 최영필-권준헌-구대성의 소모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세 투수 모두 20개 이하 투구수여서 9일 2차전 투입에도 큰 무리가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으면서도 치밀하기 그지없는 김 감독의 투수 운용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화가 3-2, 9회말 끝내기 역전 승리를 따내긴 했으나 김 감독의 평대로 "안풀리는 경기"였다. 그러나 안 풀리면 "우리가 못 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잘 해서"라고 여기는 점에서 김 감독의 여유와 내공이 담겨 있다.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기적적 4강 위업을 이뤄내고도 독선으로 흐르지 않는 '김인식 야구'는 강했다. sgo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