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대한민국에 믿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던 백화점이 눈 깜짝할 사이에 붕괴됐다. 그리고 몇년 후 미국에서도 큰 사고가 터졌다. 세계무역의 상징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테러에 의해 무너졌다. 영화 '가을로'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이 두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0월 12일 개막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프닝작 '가을로'는 백화점 붕괴로 결혼하기로 한 연인을 잃은 한 사나이가 연인의 유품에 적힌 곳을 여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붕괴사고가 있었던 당시의 상황보다는 그 이후 그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주인공 현우(유지태 분)는 여행 중 세진(엄지원 분)과 우연히 마주치고 세진을 통해 연인이었던 민주(김지수 분)의 마지막 모습을 듣게 된다. 10월 12일 국내 개봉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2001년 9월 11일 일어났던 세계무역센터 붕괴를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20명의 생존자 중 18, 19번째 생존자를 중심으로 붕괴된 건물 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던 긴박한 심경과 애타게 그들의 생존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 라인을 형성한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두 사람만 겨우 목숨을 구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가을로'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현대사에 영원한 비극으로 기록될 사건인 건물 붕괴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고 당사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공포, 아울러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의 애틋한 심경을 표현했다. 하지만 두 영화는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을로'는 붕괴사고보다는 그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통해 멜로 형식으로 풀어낸다. 반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사고 당사자들의 고통과 공포에 중점을 맞춘 휴먼드라마다. 당시 사고를 해석하는 김대승 감독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연출력도 차이가 있다. '가을로'의 김대승 감독은 백화점 붕괴에 분노한다. 김 감독은 백화점 붕괴에 대해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지만 고객들을 방치한 채 몰래 백화점을 빠져나가는 백화점 관계자들의 모습을 슬쩍 삽입함으로써 그 분노의 대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붕괴 이유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홀하다. 세계 무역 센터가 여객기의 충돌로 무너진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를 영화속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건물이 붕괴되는 장면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사건의 전말에 대한 것보다는 그로 인해 아픔을 갖게 된 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가을로'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비슷한 소재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똑같이 이번 가을에 개봉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며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다르다. 비슷하지만 다른 영화, '가을로'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pharos@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