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멜로 대하… 제각기 뚜렷한 색깔 사극이 대단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월화, 수목, 주말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사극이 대거 포진하고 있고 또 동시에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지상파 전파를 타고 있는 사극은 모두 4개. 월화에 MBC TV ‘주몽’, 수목에 KBS 2TV ‘황진이’, 주말에 KBS 1TV ‘대조영’과 SBS TV ‘연개소문’이 있다. ‘사극 천하’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극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그것이 사극 자체에 대한 열망 때문일까. 사극이 진정 전성시대를 맞은 것일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을 하기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사극이 전성기를 맞았다기 보다는 현대극의 다각화에 따른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논리다. 우리가 사극이라고 부르는 작품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사고가 현대극보다 더 현대적이라면 이것은 사극일까, 현대극일까. 사극의 배경이 되고 있는 시대적 정서에 공감하기 보다는 현대적 정서를 통해 교감하고 공감한다면 단순히 ‘사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다. 이런 혼란은 막기 위해 나온 개념이 바로 ‘퓨전’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사건을 다루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지극히 현대인이다. ‘음란서생’이나 ‘혈의 누’ 같은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단지 한복을 입고 나온다는 것 외는 본질적으로 현대극과 다를 게 거의 없다. 처음부터 ‘퓨전사극’의 기치를 들고 나온 ‘주몽’은 고구려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멜로와 드라마를 적절하게 입혀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사극을 현대극의 다각화에서 뻗어 나온 파생상품이라고 본다면 ‘사극 형식’이라는 참신함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시청자들의 경향도 설명이 된다. MBC TV ‘여우야 뭐하니’와 KBS 2TV ‘황진이’의 경쟁이 좋은 예다. 사실 ‘여우야 뭐하니’는 현대극 중에서도 참신한 요소로 따지만 가장 선봉에 서 있을 만한 작품이다. 고현정이라는 흡입력 강한 배우를 캐스팅 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국민드라마를 탄생시켰던 김도우 작가가 극본을 맡았으며 거리낌 없는 성담론으로 시작부터 화제가 됐던 드라마가 ‘여우야 뭐하니’이다. 그러나 현대극의 대표주자라 할 만한 이런 작품도 ‘황진이’의 출현에는 맥을 못 추고 말았다. 최근 들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청률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현대극의 범주에서 사극이라는 형식만 취한 ‘유사사극’의 호소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알 만한 결과이다. 결국 ‘황진이’는 단순히 사극이 아니라 조선시대 기녀들의 생활과 기예, 그리고 애환을 엿볼 수 있는 볼 것 많은 멜로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정통 사극을 주창하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대조영’과 ‘연개소문’이 그렇다. ‘연개소문’은 정통 대하사극을 표명하고 나왔지만 ‘퓨전’의 영향을 받아 중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멜로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돼 다소 모호한 색깔을 나타내고 있다. 대하사극의 정통성은 ‘대조영’이 이끌어 가고 있다. 대하사극이라는 형식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그 동안 쌓은 테크닉을 바탕으로 다양한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이라는 대하사극의 본원적 기능에도 충실하고 있다. 결국 사극을 분류하는 방식도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일 주일 내내 사극이 전파를 타고 있는데도 많은 시청자들이 그 사극을 즐겨 보고 있다면 각 작품들의 개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민하는 제작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사극이라는 형식은 상당히 매력적인 분야이다. 어찌 보면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더 없이 좋은 공간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사극도 그 표현 형식에서는 이미 상당부분 다양화 됐고 요사이 한꺼번에 사극이 만들어져 나온 것도 결국은 다양화의 결과라고 봐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노력 앞에서는 과거라는 시간의 장벽도 이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100c@osen.co.kr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주몽’ ‘황진이’ ‘대조영’ ‘연개소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