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인 추석 시즌이 지나고 11월에 들어 작은 한국영화들이 연달아 개봉해 눈길을 끈다. 작은 영화란 제작비가 작은 저예산 영화를 말한다. 가장 앞서 개봉한 것은 배창호 감독의 신작 ‘길’(11월 2일 개봉)이다. 20년대 집을 떠난 이후 남도 각지의 장을 떠도는 대장장이 태석(배창호 분)의 사연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5억여 원, 스태프는 20여명에 불과하다. ‘길’에 이어 15일에는 지난해 초에 완성된 ‘방문자’(신동일 감독)가 개봉된다. 이 영화는 인생이 안풀리는 불만투성이 시간강사 호준(김재록 분)과 항상 웃는 얼굴의 전도청년 계상(강지환 분)이 친구가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세상살이를 그리고 있다. 특히 ‘방문자’는 MBC 일일연속극 ‘굳세어라 금순아’로 스타덤에 오른 강지환이 드라마에 앞서 출연한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작비는 1억 3000만 원, 스태프는 경력자와 비경력자를 포함한 19명이다. 이튿날인 16일에는 퀴어멜로 ‘후회하지 않아’(이송희일 감독)가 관객들을 찾아간다. 부잣집 아들(이한 분)과 게이 호스트바 선수(이영훈 분)의 운명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제작비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전 해외판권 판매수익과 케이블TV 부가판권으로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긴 상태다. 23일에는 두 편의 저예산 영화가 함께 개봉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한 ‘세 번째 시선’과 판타스틱 코믹호러 뮤지컬 영화 ‘삼거리극장’(전계수 감독)이 바로 그것이다. 인권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6편의 단편이 엮인 옴니버스 ‘세 번째 시선’의 총 제작비는 5억 원 미만이고, 장르만 봤을 때 왠지 화려하고 현란하기만 할 것 같은 ‘삼거리극장’의 제작비도 10억 원 미만이다. ‘여자, 정혜’ ‘러브토크’의 이윤기 감독의 신작 ‘아주 특별한 손님’은 30일에 개봉한다. 20대 초반의 한 평범한 여성이 예기치 않은 하룻밤의 여행을 통해 불안과 방황 속에서 작은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제작규모는 작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한국영화 1편당 평균제작비보다 훨씬 저렴하게 제작됐지만 개봉 전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배창호 감독의 ‘길’은 제14회 필라델피아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제4회 광주국제영화제 폐막작과 제1회 CJ아시아인디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방문자’는 베를린영화제, 시애틀영화제,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시카고 영화제 등 12개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됐다. ‘후회하지 않아’과 ‘아주 특별한 손님’은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됐고, ‘세 번째 시선’과 ‘삼거리극장’은 언론 및 일반시사 후 호평을 받고 있다. 작은 영화들이 11월에 대거 개봉하지만 개봉관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여느 장편상업영화 1편의 상영관 수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그나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마니아 팬들의 지지를 받는 ‘후회하지 않아’가 6개 개봉관을 확보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각 영화 모두 관객들의 지지와 작품성으로 롱런을 예상하고 있지만 과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많은 영화감독들과 영화인들은 단편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아직 일반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pharos@osen.co.kr
